나는 소설을 읽는 걸 잘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위주의 소설이 아닌, 요즘 소설은 추상 미술을 보듯이 뭔가 다른 부분을 살펴야할 것 같은 데, 뭘 중점으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명작이라고 하는 소설들이 어떤 면에서 명작인지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읽으면서 이런 소설은 확실히 읽으면서 내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가 있다. 아마도 어느 나라의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몇일간의 일을 따라가면서 영화처럼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느낄 법한 감정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허영만 선생님의 만화 '타짜'와 같은 느낌도 있다. 물론 재미로 치면 타짜가 훨씬 낫지만, 글로 쓰여있는 그 시기의 시대상, 군인과 무도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티타임을 가지는 문화의 특이성, 도박에서의 빚을 꼭 갚아야한다는 의무감이라던지, 친구의 어려움을 위해서 1000굴덴을 어떻게든 만들어주려고 하는 주인공의 마음씀의 차이 등이 뭔가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재미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이 돈을 땄을 때 도박을 그만두기를 응원하면서 빌었다. 그런데 어떤 운명이었는지, 계속해서 도박장으로 다시 돌아가다가 결국은 자기가 감당할 수도 없는 돈을 도박으로 잃고, 그 빚을 갚으려고 동분서주 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안타까웠다. 그런, 한편으로 엄청난 도박빚을 진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깨달으면서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에서 내가 주인공의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도박빚을 갚지 못하고 끝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 그가 예전에 만났던 여성에게서 온정을 받게 되고, 그 여성과 삼촌과의 관계를 보면서 역시 우리나라의 문화는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떠오르는 몇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1. 왜 주인공은 도박빚에 대해서 더이상 갚을 수 없다는 파산선고를 하지 않았을까?
2. 군인의 명예를 잃게 된다는 것이 소설속 사회에서는 얼마나 큰 위험인건가?
3. 자신의 다른 동료도 도박빚으로 인해서 다른 길을 가서 잘 살고 있는데, 왜 그런 길을 찾을 방법은 없었을까?
4. 내가 그 상황이면 주인공과 같은 포기를 했을까?
5. 그 여자는 마지막으로는 왜 남자에게 필요한 돈을 빌려줬을까? 그 돈을 빌려주는 것을 조금만 더 빨리 알려줬다면 다시 재회하여 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을까?
정말 여러가지 질문이 떠오르고, 그 질문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답을 찾아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나에게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가정과 감정을 전달해 준다.
작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본인이 도박으로 고통에 빠졌던 경험을 소설에 녹였다고 하는데, 작가의 담백하게 왠지 1인칭이지만 3인칭시점에서 상황을 묘사하는 듯한 문체는 소설에 몰입을 시키는 것 같다. 배우고 싶은 문체와 서술방식이고 다른 책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주인공은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라는 것을 가질 사랑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을 한다. 이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 나의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삶에 대한 미련을 갖도록 하는 것은 사랑하는 존재일 것이다. 주인공은 이 세상에 자신이 사랑하거나, 자신이 되고 싶거나, 자신의 소명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로인해서, 넘길 수 있는 위기상황에서 더 쉬운 포기라는 선택을 했던 것이 아닐까?
내가 그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어떤 것을 구명줄로 삼아서 다시 일어나기 위해 노력할까? 나의 가장 귀중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집안 여자들이 지난 사육제 무도회에서 알게된 소위에게 예의상 차나 한잔하러 오라고 초대했을 뿐인데,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일요일마다 찾아오니 반가울 리가 없을 것이다. (P23)
어느새 그가 옛 동료를 돕기 위해 모으려던 목표 금액 1천 굴덴을 수백 굴덴이나 넘어섰다. (P33)
어느 여인의 뒤를 따랐다. 눈동자가 검고 몸매가 날씬한 여자였다. ~~~ 누군가가 그녀를 향하여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여자는 빌리를 향해 넌지시 조롱의 눈길을 보내더니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의 가운데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P37)
마치 돈을 딴 것이 당연한 일인 양, 환호성을 지를 만큼 기쁘지는 않았다. (P40)
어느 집 앞마당에서 셔츠 차림의 노인이 나무에 물을 주고 있었다. ~~~ 누추한 옷차림의 젊은 여자가 우유가 가득 담긴 우유 통을 들고 나왔다. 빌리는 두 사람이 부러웠다. ~~~~ 그는 이들이 자신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느꼈다. (P70)
지금 그의 직장, 그의 인생이 경각에 달렸다. ~~~ 부채 지급 기한을 연장할, 조금이라도 연장할 만한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P72)
어느 카페 앞에서 뚱뚱한 노파가 솔과 걸레로 대형 유리창을 닦고 있었다. 평소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사람과 사물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렬하게 빌리의 시야에 가득 차 들어왔다. ~~~ 빌리는 겁먹은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P78)
레오폴디네와 함께 있었던 짧은 시간, 격려와 희망, 안도감 그리고 실망감 등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빌리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P117)
매우 느리긴 했지만 어쨌든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P119)
소파의 길이가 너무 짧아 두 발이 팔걸이 아래로 축 늘어졌지만, 빌리는 마치 어두운 심연으로 꺼져 들어가듯 깊은 잠에 빠졌다. (P120)
자신을 팔 각오가 돼 있었음을 갑자기 깨달았기 때문이다. ~~~ 벼랑 끝에 몰린 자기를 구해줄 돈만 준다면 레오폴디네가 아닌 다른 여자, 세상 아무 여자에게나 기꺼이 자신을 팔았을 것이다. (P139)
지폐는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른 반듯한 종이처럼 판판하게 펴질 것이다. ~~~ 어쩄거나 보그너 문제는 책임지고 수습하고 싶었다.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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