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빨리 읽는 속독가는 아니다. 물론, 천천히 읽는다고해서 책의 내용을 곱씹어서 내것으로 만드는 충실한 독서인도 아닌 것 같다. 대략적으로 하루를 쉬지않고 읽으면 100~140페이지 정도를 읽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책이면 몇백페이지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다고 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대단한 집중력이고 속독이라고 감탄하곤 한다.
보통 요즘 책들이 280페이지에서 350페이지내외 정도의 책들이 많다. 이럴 경우, 책 한권을 읽는데 보통 3~4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책은 250페이지 정도여서 이정도면 2일에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실제로는 3일이 넘게 걸린 경우도 많다.
"타인이라는 가능성"이라는 책은 시작에서 끝까지 걸린 시간이 딱 2일이다. 2일쨰 밤 10시 정도에 끝이 났으니까 하루에 150페이지 이상씩을 읽은 것 같다.
이 책은 예전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인생수업"을 떠올리게 한다. 문장이 굉장히 아름답게 씌였고,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아래에 정리된 것처럼 엄청 많다. 인생수업은 1편과 2편이 있는데, 1편의 감동으로 2편을 구매했다가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1편과 2편은 역자가 바뀌었었다. 1편의 저자는 류시화 시인, 2편의 저자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문장력도 너무 좋다고 생각했지만, 역자(김하현님)의 역량이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의 이전 번역서를 살펴보던 중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번역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분이 번역한 다른 책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장르를 따지자면 어디로 분류하면 좋을까? 학문적으로는 문화인류학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된다.
저자는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경험하고, 타인과 환대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키워드를 깊이 고민한 것으로 느껴졌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의 관습에서 두려움과 기대에 따른 조심스러운 접근법을 찾아내고, 어떻게 타인과 연결될 것인지, 자연스러운 타인과의 관계맺기의 방법들을 찾아나간다.
집과 공동체의 의미, 안전의 역설적인 조건, 이방인, 경계심을 없애는 방법, 환대의 이중성, 만찬을 통한 관계맺기, 떠남의 기술에 더해서 뜬금없지만 유령에 대한 얘기까지를 낯선세상을 맞이한다는 카테고리 안에 넣어두고 있다. 낯선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열린 마음일 것이다. 책 전반에서 오디세우스의 사례들을 예시하면서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다양한 방식들을 얘기해 준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지만, 읽고 난 이후에 휘발되어 버리는 문장들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자발적 추방이라는 의미의 페레그리니티오, 이동의 기회와 위협, 국경의 탄생과 불확실한 문턱, 대도시에서의 외부인에서 우정으로 연결되는 과정, 세계시민주의와 다문화 도시의 빛과 어둠, 도시의 외로움과 환대가 만들어내는 불가리아의 바바 레지던스=할머니 레지던스, 도시의 젊은이와 시골의 노인들과의 연대를 만들어내는 운동에 대한 설명은 기억에 계속 남을 것 같다.
이 책의 주제는 제노포비아(타인에 대한 두려움)와 폴리제니아(타인의 가능성, 혁신) 라는 사람에 대한 긍정성과 부정성의 2가지 관점이다. 우리는 타인을 두려워하며 문을 닫고 안전을 도모해야 할까? 문을 열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야 할까?
인류 역사를 훝어보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관습적으로 어떻게 대처해나왔는지를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시끌벅적한 만찬을 통한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이 문화를 만들고 신뢰를 이끌어내고 서로 돕고 나아가는 힘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타인을 받아들일 열린마음을 제안하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망가라이족은 삶의 고난과 위험에서 몸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성을 짓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만드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P45)
진심으로 우리의 취약함을 관리하고 싶다면, 그 방법은 정교한 기술이 아니라 서로에게 있다. 삶을 공유할 때 느껴지는 안정감 있는 온기에 있다. ~~~~두려움이 최고조에 달할 때, 때때로 집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P48)
처음에 사람들은 완전히 방어적인 태도로 다가오는데, 우리가 이웃이나 친구처럼 대하면 그런 방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어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만 변화하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앙은 인사를 나누고 먹을 것을 내놓는 것...(P70)
우리는 만취를 통해 감정을 북돋는다. 더욱 강렬하게 사랑한다. 분노는 더욱 뜨겁게 타오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 함께 술을 마심으로써 타인 앞에서 자신을 통제하는 미덕을 실험할 수 있다. (P136)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은 즐거움에 있음을.....함께 열기와 온기를 만들어내고 유대감을 쌓는 방법 중 한 냄비에 시끌벅적하게 음식을 끓여 먹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P140)
독일어 : 손님과 생선은 3일이 지나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P157)
브루스 채트윈 : 길에 대한 이 모든 종교적 은유가 정착 이후 과거의 수립채집 생활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보상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초월적 종교는 정착으로 삶이 망가진 사람들을 위한 계략이다." (P195)
낯섦 속에 침잠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갑자기 스스로가 낯설어진 채로, 내가 전과 달라지게 놓아두고 있었다. 선택하지 않은 외로움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외로움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 (P291)
무수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지만 만지거나 붙잡을 사람, 대화를 나눌 사람, 비밀을 공유할 사람, 농담을 하고 수다를 떨 사람이 없다는 인식에는 잔혹한 쓰라림이 있다. (P297)
외로움은 돌봄이나 인정,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은 이런 것들을 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P304)
이렇게 나는 찢어진 내 세상의 천을 다시 꿰매기 시작했다.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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