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상에 언어라는 것이 생겨난 이후로 인류의 소통이 시작되었을 때, 그동안 읽었던 어느 책에서나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사실처럼 확정해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수학에서의 극한과도 같이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서 완전한 이해는 아닐지라도 그 깊은 속을 사실에 가깝게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발견하게 합니다.
소설이라는 있을 법한 이야기 속에 한 문장 한 단어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기억과 상황들을 통해서 타인의 생각과 경험을 미루어 짐작하면서 인간으로서 가지게 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애란이라는 작가는 굉장히 유명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에 대해서 물어보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책 좀 읽는 사람들은 모두 이 작가의 전작들을 잘 알고 있었고, 몇권의 다른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나의 한국 문학에 대한 무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제 누군가에게 추천해 줄만한 현대 한국 소설 관련 책이 3권은 넘게 되었습니다. 권여선님의 '안녕, 주정뱅이', 정지아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그리고 김애란님의 '안녕이라 그랬어', 그리고 문학평론가인 신형철님의 '인생의 역사'는 누구에게 추천해도 자랑스러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이야기 속의 시기는 한국이 코로나로 몸살을 앓은 2019~2023년 사이의 에피소드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는 아파트 가격 급등, 코인 상승, 실직 등으로 빈부의 격차가 더 커게 벌어졌던 순간이었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더 힘든 시기였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좋은 이웃'과 '빗방울처럼'에서는 집값 상승과 전세사기 피해자의 애환이 나옵니다. 2026년인 올해에도 이처럼 수도권 내에서 자기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호가에서 오는 아파트가격 상승과 전세의 월세전환으로 오는 경제적 어려움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할 일을 하면서 성실히 살아왔는데, 집값이 오를지 말지의 구슬치기 홀짝의 게임처럼 맞춘 사람과 맞추지 못한 사람이 어느 순간 부의 격차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벌어져버립니다.
내 삶에 대한 의미가 자본의 양으로 측정되고, 그로인해서 내 삶 자체가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홈파티의 문장이 어쩌면 이 책의 핵심적인 모티프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방 이래 한 번도 돈을 욕망하지 않은 적 없으면서, 겉으로는 노동과 근면을 미덕인 양 가르쳐온 사회가 갑자기 저더러 문맹이라니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 실존을 부정당한 것 같아서. (P38)
숲속 작은 집에서 남편과의 '작은 차이'가 경제적 성장환경의 차이이고, 주인공의 내면의 갈등도 '정성과 인간성에 대한 가치존중'과 '경제적인 권력'의 사이에서의 내면갈등을 드러낸다는 측면의 해석은 결정에 우유부단한 답답한 주인공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한편 한편에서 내 상황과 연결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인물들의 심리를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저자를 사회학자로 부르는 평론가의 말에 깊이 동감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행동과 말 속의 의미를 너무나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관찰함으로써 이렇게 살펴보면 우리 몸 속의 세균들까지 살펴 보면서 사람을 '세균 군집'으로 설명했던 에드 용의 '내 속의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처럼 사람을 보겠다는 불편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다각도의 관찰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듭니다.
있지 않았지만, 혹은 비슷한 일이 있었겠지만 그 속에서 나와 같이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감사히 읽게 되는 책이었다고 마무리합니다.
홈파티
'정말 비싼 정보는 온라인에 없고 세상 많은 중요한 일은 식탁에서 이뤄지기 마련' (P13)
거기 있는 걸 없는 척하고 있는 셈 치는 건 연극의 중요한 약속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건 가식이나 위선과는 다른 거였다. (P18)
이연은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상대에게 직접 가하는 힘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향한 통제력이라 할까, 오랜 시간 '판단'과 '선택'이 몸에 밴 이들이 뿜어내는 단단하고 날렵한 기운이었다. (P24)
해방 이래 한 번도 돈을 욕망하지 않은 적 없으면서, 겉으로는 노동과 근면을 미덕인 양 가르쳐온 사회가 갑자기 저더러 문맹이라니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 실존을 부정당한 것 같아서. (P38)
정착금으로 명품 백 사는 것 : 제일 잘 감출 수 있는 거라 그런 거 아닐까요? ~~~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 (P39)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서 뭔가 뺏고 싶다면 그에게 먼저 그걸 주어라'라는 법칙. (P43)
숲속 작은 집
직장 일로 영혼이 어둑해지거나 인간에게 자주 실망할 때면 혼자 이국의 낯선 도시를 검색해보곤 했다. 태블릿 피시와 다정히 얼굴을 맞댄 채 열대지방 햇볕 쬐듯 전자파를 쐬었다. (P50)
결국 어떤 공간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낡음'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P53)
어려서부터 몸에 밴 귀족적 천진함이 있었다. 남으면 버리고, 없으면 사고, 늦으면 택시 타는 식으로 오래 살아온 사람이 가진 무심한 순진함이 ~~~ "그냥 대충대충 해.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별 차이'에 대한 감각이 지호와 나의 큰 차이였다. (P58)
누군가 오랜 시간과 재능, 정성을 들여서 만든 걸 보면 절로 가슴이 뛰었다. 세상에는 정말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물건이 있었다. (P60)
변을 봤다. 부부라는 취향 공동체, 경제 공동체가 맛과 지출, 건강에 합의한 '지향'의 찌꺼기를 밀어냈다. (P62)
그 사람이 정말로 우리에게 하려는 말은 '당신이 잘못됐다'는 거였다. (P63)
돌이켜보면 엄마는 엄마여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게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P77)
좋은 이웃
나는 시우 집에 갈 때마다 그 거대한 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과시적이지도 방어적이지도 않은 공간이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맞아주는 것 같아서였다. (P114)
무주택자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댓글이 난무했다. 시기니 질투니 하는 말도 모욕적이었지만, 무지니 게으름이니 하는 말도 부당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한 건 '어쩌면 잘못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었다. (P120)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P141)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P142)
이물감
이들의 삶이 영롱한 비즈로 만든 발처럼 순식간에 펼쳐졌다. 세계 다양한 인종과 총천연색 시공이 위화감 없이 섞였다. 북극의 오로라, 열대의 낙조, 도시의 마천루, 얼룩 없는 창, 전선 없는 방, 보풀 없는 옷, 질병 없는 신체, 그림 같은 요리가 줄지어 늘어섰다. (P148) - 인터넷 SNS 에 대한 표현으로 멋짐.-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 : 많은 얘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찝찝한 후회나 반추를 안 하게 만드는 사람. 상대에게 자신이 판별당하거나 수집당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은 사람. 근본은 따뜻하되 태도는 신선한 술친구였다. (P152)
수명이 다한 행성처럼 천천히 멀어지던 둘의 관계가 눈앞에 떠올랐다. 둘 중 누구도 그걸 막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P155)
나이드니 마음이 넓어지는 대신 얇아져서 쉽게 찢어지더라. (P163)
이따금 위에서 쓴 물이 올라오면 기태는 그게 음식맛이 아니라 자기 맛처럼 느껴졌다. (P174)
늙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P176)
오랜 시간 질 좋은 음식을 섭취한 이들이 뿜는 특유의 기운이 있었다. 단순히 재료뿐 아니라 그 사람이 먹는 방식, 먹는 속도 등이 만들어낸 순수한 선과 빛, 분위기가 있었다. ~~~ 음식이 혀에 닿는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찰나가 쌓인, 작은 쾌락이 축적된 얼굴이랄까 ~~~ '내장의 관상' (P179)
기태는 바로 그런 접대 자리에서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 하지 않은 말을 통해 원하는 걸 얻는 이들을 자주 목격해왔다. (P186)
레몬케이크
내 고통에 무심한 자연 앞에서 이상하게 안도한다. (P204)
엄마 읽는 모습 : 뭔가 글 비슷한 걸 읽고 있는 거였다. 그 모습이 몹시 고요하고 또 정갈해 보였다. (P208)
여느 때처럼 안타까움과 미안함, 짜증과 홀가분함, 연민과 죄책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P209)
안녕이라 그랬어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지니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P231)
은퇴 후 옷 잘입기 : 자신의 노동 앞에서 어떤 격식과 약속을 지키는 것 (P232)
'당신은 옷도 잘 입고 늘 괜찮아 보였는데' ~~~ '우리 다 그렇지. 그렇게 보이지. (P244)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배웠어'라는 가사 ~~~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P249)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P250)
나는 늘 부러웠거든. 자기 부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 하고 싶은 말과 해선 안되는 말, 할 수 없는 말 등이 뒤엉키지 않았을까? ~~~ 내가 가장 그리워한 사람은 헌수였다. 나와 결혼할 뻔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고독을 겪은 사람이라 그랬다. (P252)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아마 나는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 (P253)
빗방울처럼
비는 한 집위에서만 내리는 게 아니다. ~~~ 카메룬 속담. (P286)
신형철 : 네 이웃을 네 돈과 같이
'표현론'의 미학자 R.G. 콜링우드는 ~~~ '예술의 원리들(1938)' ~~~ "우리에게 예술가가 필요한 이유는 어떤 공동체도 자신의 마음을 전부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는 실패한 표현은 '추'는 아니라 '악'이라고 덧붙였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것이야말로 악의 진정한 근원인데, 좋은 예술은 공동체를 제 마음과 대면하게 함으로써 의식의 부패를 막는'약'이라고 말이다. (P312)
마지막으로 점점 말과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마치 세상에 아는 말이 그것뿐인 양 가족의 이름만은 이따금 또렷이 발음하시는 아버지께, 딸이 새 책을 내고 신문에 날 때마다 누구보다 기뻐하셨던 아버지께, 이제는 그가 읽을 수 없는 책의 한 면을 빌려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 작가의 말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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