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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책읽고 내 생각 적기)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2024) -줄리언 반스-

by 무우우우니 2025. 1. 31.

내가 읽은 두번째 줄리언 반스의 책이다. 첫번째로 읽었던 책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책이었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두번은 읽어야하는 책이라는 설명처럼, 다시 떠올려봐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어떤 내용의 소설이었는지, 다른 독후감을 살펴보고서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도 읽는 내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문장 한문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읽어야 했다. 몇몇 표현들은 따라 쓰고 싶을 만큼 신선하고, 재미있었고, 어떤 주장과 내용은 설득적이고 지적인 내용이었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읽게 됐고, 이야기의 줄거리보다는 각 문장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 신경이 더 많이 쓰였다.

이 책의 원작 제목은 'Elizabeth Finch'였지만, 한국어 제목은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라는 묘하게 말이 안되는 뭔가 숨겨진 뜻이 있을 것 같은 제목으로 바뀌었다. 비켜가지 않는 우연은 필연이 아닌가? 엘리자베스 핀치라는 완성된 형태의 선생을 만나는 것이 반드시 일어나야했던 우연이라는 것을 뜻할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2번의 이혼과 3명의 어머니가 다른 자녀를 가진 실패한 배우, 아들로부터 '미완성 프로젝트의 왕'이라는 별명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그는 성인들을 위한 '문화와 문명'이라는 강좌에서 엘리자베스 핀치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성숙하고 고차원적인 '더 길고, 더 높은 관점을 가진' 어른으로 인식하면서 매혹되었다. 엘리자베스 핀치라는 사람에 대한 묘사와 그녀와의 만남에 대한 얘기를 통해서 이성적 남녀관계를 벗어나는 인간적 찬사를 보낼만한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엘리자베스 핀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그녀와는 20여년동안 한해에 2~3번의 점심을 같이하면서 깊이있는 교류를 이어온다. 그러다가 그녀의 죽음을 듣게 되고, 그녀의 서재의 책들을 유산으로 받는다.

그 유산을 통해서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핀치에 대해서 더욱 알아가기 위해서 탐구하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엘리자베스 핀치를 추모했다. 엘리자베스 핀치의 메모를 통해서 찾게 된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대한 관심을 파고들며, EF를 대신해서 율리아누스에 대한 책을 써나간다. 여기서부터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비유가 포함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보다는 덜 극적이고 덜 극단적이지만 이게 어떤 사람의 인생을 보든 벌어지는 일인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의 부모, 친구, 연인, 적, 자식이 각각 보는 방식.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그의 진실을 눈치채기도 하고, 오랜 친구가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본다. 뭐, 사람으로 살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P288)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대한 숨겨진 역사를 찾는 챕터2를 지나서 챕터3에서 헤어진 연인과의 만남을 통해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와 같은 사실에 대한 반전이 나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는 기억이라는 것의 불확실성을 말한다면 이번 화를 통해서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자기가 흠모하고, 추모하고자 하는 EF에 대해서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과거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일이었다는 것은 위의 문장이 줄리언 반스가 얘기하고 싶은 다른 한 축의 핵심이 아닐까라는 의혹을 가지게 한다.

EF에 대한 주인공의 관점과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대한 시대적 시각의 차이, EF에 대한 같은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인식의 차이를 통해서 사람과 사건에 대한 인식은 절대적 객관성을 띨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이 책의 어떤 면을 강조하는 제목일 것인지 궁금하다. 이 제목으로부터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연의 산물이며,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 나에게 발생했을 때, 그 우연은 비켜가지 않은 우연이며 필연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세상의 모든 관점은 우연히 일어난다. 하지만, 그 관점으로 해석된 일은 서사를 가진 결론으로 기억하게 되면서 우리의 머릿속에 남겨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여러분이 이 강의를 흥미롭게 여기기를, 사실 즐거워하기를 바라요. 그러니까 엄격한 즐거움이죠. (P12)

그녀의 고요와 목소리로 주의를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P16)

mono, 이 접두사가 인간사에 붙을 때는 ~~~ 시간이 지나고 보면 늘 재앙이죠. (P25) 

엘리자베스 핀치 : "아, 연기." ~~~ "진정성을 생산하는 인위성의 완벽한 예." (P30)

엘리자베스 핀치 : "적당한 행복에 적당히 만족하라. 인생에서 유일하게 분명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건 불행이다." (P31)

우리의 시시껄렁한 작은 생각을 훨씬 흥미로운 것으로 바꾸어주곤 했다. (P32)

엘리자베스 핀치는 완성품이었다. 그녀 스스로 만들어낸 것,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낸 것, 세상이 제공한 것의 합이었다. ~~~ 우리의 엉성한 공상이 그녀의 독특함에 대한 초기의 불필요한 반응임을 이해하고 옆으로 밀어놓게 되었다. (P35)

우리가 우리 내부에서 진지함의 중심을 구하고 찾게 했다. (P36)

기독교라는 종교의 성공 비결 한 가지는 늘 최고의 영화제작자를 고용한 것이죠.  ~~~ 역사는 무기력하게 혼수상태로 누워 우리가 크고 작은 망원경을 들이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활동적이고 들끓고 가끔 화산처럼 폭발한다는 것이었다. (P37)

모차르트 딜레마 : 삶은 아름답지만 슬픈가요, 아니면 슬프지만 아름다운가요? (P40)

에픽테토스 : 본성상 속박하는 것이 자유를 준다거나 네 것이 아닌 것이 네 것이라고 생각하면 좌절하고 비참해지고 화가 날 것이며 신과 사람 탓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네 것만을 네 것이라 생각하고 네 것이 아닌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도 너에게 강요하지 않고 아무도 너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고 ~~~ (P42)

그녀는 우리가 뻔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우아하게 이끌면서 우리를 교정해 주었지만 깎아내리지는 않았다. (P56)

에르네스트 르낭, 위대한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철학자 : "나라로 존재하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우리나라가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기 위해 항상, 매일, 작은 행동과 생각, 또 큰 행동과 생각에서 우리 자신을 속여야 해요, 위안을 주는 잠자리 동화를 늘 반복하듯이~~~ (P63)

나와 안나의 연애는 1년여 지속되다가 내재한 비대칭성 때문에 무너졌다. (P77)

우리의 점심은 거의 20년 동안 계속되어 내 삶의 고요하고 빛나는 지점이 되었다. (P80)

나는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작별도, 소환도, 마지막 메시지도 없었다. (P81)

나는 엘리자베스 핀치와 둘이만 있고 싶었고, 그래서 그녀를 머릿속에 넣은 채 집으로 갔다. (P82)

생명을 발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죽은 종잇조각들. (P88)

작은 차이의 나르시시즘 : 프로이트가 널리 알린 개념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작은 차이를 근거로 자기 정체성을 주장한다는 뜻이며, 공통점이 많은 개인이나 집단 간 갈등이 더 심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P105)

그녀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리고 자기 나름의 수준에서 살고, 또 느끼고, 또 생각하고, 또 사랑했을 것이다. ~~~ 잡동사니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을 지워야만 다시 더 분명하게 보고, 또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P107)

남자와 여자 관계 혼란 : 남자와 여자. 오해와 오독, 거짓의 또는 게으른 동의, 좋은 의도를 가진 거짓말, 상처를 주는 투명함, 도발 없는 폭발, 감정적 나태를 감추고 있는 신뢰할 만한 다정함. 그리고 기타 등등. 자신의 마음도 거의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P110)

율리아누스는 살육을 거부하며 "부드럽게", 온유하게, 관용으로 갈릴리인들을 공격했다. (P142)

그에게는 기후 이론이 잠깐이라도 적용되지 않았다. ~~~ 관능적 욕망의 만족을 추구하라고 권하는 아시리아의 따뜻한 기후에서도 ~~~ (P153)

우리는 매일 인간이라는 굽은 목재를 상대해야 한다. 비이성과 탐욕과 자기본위. (P161)

통치자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거의 예외 없이 더 보수화되고 관용은 줄어든다. (P162)

볼테르에게 관용과 종교적 자유는 계몽에 이르는 두 핵심요소였다. (P181)

기독교는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적을 멸절한 최초의 신조였다. 그 기조는 불관용이다. (P201)

"가족으로 존재하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P226)

우리의 도덕적 태도와 행동의 원천은 우리 대부분이 의식하는 것보다 먼 과거에 있다는, ~~~ (P229)

에픽테토스의 "편람"의 핵심 머리말 :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P234)

타성은 사랑을 죽인다. 성적인 사랑만이 아니다. 모든 사랑이 마찬가지다. (P239)

내가 평생 만난 가장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 ~~~ 그냥 더 길고, 또 더 높은 관점을 갖고 있었을 뿐이었다. (P240)

죽음 이론가들은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이 살아온 것과 화해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지만 ~~~ 나는 엘리자베스 핀치는 제대로 추모했다. (P248)

내가 고요한 중심이 없고, 따라서 본능적인 도덕 탐지 장치가 나를 읽는 방법의 하나였다. (P254)

결론은 주지만 서사는 주지 않았어. ~~~ 우리가 이해하고 기대하는 서사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 (P268~269)

일반적 유산 외에 구체적 유산도 남겼음을 깨달았다. 단어와 표현이라는 유산, ~~~ 생각이라는 유산. (P286)

이보다는 덜 극적이고 덜 극단적이지만 이게 어떤 사람의 인생을 보든 벌어지는 일인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의 부모, 친구, 연인, 적, 자식이 각각 보는 방식.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그의 진실을 눈치채기도 하고, 오랜 친구가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본다. 뭐, 사람으로 살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P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