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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책읽고 내 생각 적기)

광기와 우연의 역사(2024) -슈테판 츠바이크-

by 무우우우니 2025. 1. 15.

작년에 '발자크 평전'을 통해서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츠바이크의 글에 매혹되어서 다른 책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어디선가 인용된 내용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아마도 고등학교 시험에 나오는 영어지문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그럴만큼, 잘 씌인 문장으로 이름높은 것 같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츠바이크의 글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감탄을 자아내는 비유와 확신에 찬 단정적 문장으로 기억 속에 각인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그 시대에 그 인물의 옆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마도 확신에 찬 문장으로 표현되는 어투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 책에서는 14개의 역사적 순간을 제시해 준다. 우연은 이해가 되지만, 광기라고 할만한 장면은 언뜻 떠오르는 것이 없다. 긴 역사 속에서 저자는 왜 이 책의 에피소드 14개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해석은 나오지 않는다. 인류사적으로 엄청난 변곡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더 많은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을텐데, 츠바이크에게는 이 14장면이 글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살짝 옅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역사의 장면에 들어가서 그 당시의 사건들을 알아가다보면, 영화를 한편씩 보는 것 같고, 세계사에서 그 14가지 에피소드가 가장 중요한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츠바이크가 왜 그 14가지 에피소들를 선별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읽다보니, '발자크 평전'에서도 느꼈지만, 츠바이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장면들에 관심을 가진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이것은 해설본에서 '패배자의 운명에 마음이 가고, ~~~ 도덕적 의미에서 옳게 행동한 인물들에게 마음이 간다.'는 맟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츠바이크는 세상으로부터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패배자에 대해서 변호하듯 글을 쓰고, 그 설득력 있는 문장에 독자로 하여금 그 인물에 대한 편견으로 치우친 의견을 살며시 바꾸게 만든다.

14편의 모든 글이 기억속에 뚜렷이 남지는 않았지만, 14편 모두에서 인간의 다각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다양한 관점을 보여줌으로써 섣부른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경고로 츠바이크의 책들을 읽게 된다. 특히, 워털루 전투를 주인공인 나폴레옹이 아닌, 그루쉬 원수를 중심으로 설명함으로써, 당시의 전투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묘사하면서 역사의 우연과 전쟁에서의 실기의 아쉬움을 현장처럼 긴박감을 보여주는 글쓰기는 그냥 감탄만 나오는 최고의 작품이다.

 이 책을 익고 난 이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 세상에 츠바이크가 없고,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츠바이크처럼 우리에게 되짚어줄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한편으로는 츠바이크가 관심가졌던 18세기가 산업혁명, 시민혁명, 볼셰비키 혁명 등 사회변혁의 시기였고, 그 시기의 장면장면들을 사진처럼 기록으로 남기는 글쓰기는 꼭 따라가고 싶은 글쓰기의 모범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책으로 인해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이제는 그 책이 조금은 머리에 들어올지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많은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사실보다는, 승리한 후 관용을 보였다는 점에서 뛰어난 인물이다. (P10)

사상가와 예술가는 야만과 교활함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영역을 떠나 남들이 건드릴 수도, 파괴할 수도 없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영역으로 돌아갈 수 있다. (P11)

사색하는 인간은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리기 때문에 결정적 순간에 행동하는 경우가 드물다. (P20)

무력한 사람은 인간성을 옹호하면서 인간의 공존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최고의 이상이라고 아들에게 말한다. ~~~ 세련된 휴머니스트에 불과했던 키케로는 죽기 직전에 휴머니티를 처음으로 옹호하는 사람이자 참된 정신문화의 대변인이 된다. (P26)

비잔티움 함락 : 역사에서 이성과 화해의 순간은 짧고 허망한 법이다. (P45)

전쟁 채비를 하는 전제 군주는 준비를 완벽히 하기 전에는 평화를 거듭 강조하곤 한다. (P46)

밤이 되면 우리의 감각은 상상의 날개를 타고 솟아오르며 부질없는 희망은 감미로운 꿈으로 활짝 피어난다. (P57)

위대한 일은 늘 조용히, 영리한 일은 늘 계획대로 진행되는 법이다. (P59)

케르카포르타를 잠그는 것을 잊어버린, 지극히 하찮은 우연한 사건이 세계사를 결정지은 것이다. (P72)

후회해 봤자 잃어버린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한 인간의 삶에서나 역사에서나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그러친 것은 천 년을 들여도 되돌릴  수 없다. (P75)

대담한 일을 저지런 탓에 치러야 하는 벌을 면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더 대담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P90)

뇌졸중 : 땅속에 신비스러운 온천수가 흐르듯이 그의 마비된 껍데기 속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살아 있었다. 바로 헨델의 의지였다. (P114)

많이 고통스러워한 사람만이 기쁨을 안다. 시험을 당한 자만이 은총을 베푸는 자의 궁극적인 자비로움을 안다. (P124)

그는 제 몫의 일을 잘 해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머리를 치켜들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다. (P137)

텅 빈 조개껍데기가 파도 소리를 내듯, 그의 내면에서는 들리지 않는 음악이 울렸다. ~~~ 음악이 밀어닥치며 부풀어 오르더니 천천히 영혼을 지친 몸에서 떼어냈다. (P138)

'라 마르세예즈' ~~~ 차분히 앉아서 편히 즐기려는 청중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함께 행동하고 함께 싸우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이다. (P151)

진정 감동한 사람은 창의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P153)

젊은이들 모두 이 노랫말에 자신들의 내밀한 의지와 본연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느낀다. (P154)

혁명은 자신을 대변할 목소리를 알아보았고 자신을 대변할 노래를 찾아낸 것이다. (P155)

워털루 전투는 긴장과 극적 상황으로 가득한 예술 작품이다. 전투 내내 두려움과 희망이 끊임없이 교차하다가 갑자기 극단적인 파국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그렇다. (P168)

주체성 없는 사람은 늘 명령서에 따를 뿐, 운명의 부름에는 절대 따르지 않는 법이다. (P171)

위대했던 순간이 속세의 삶을 사는 인간을 찾아 내려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 그 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모진 복수를 당하게 된다. ~~~ 웅대한 운명의 순간은 늘 천재만을 택해서 불멸의 형상을 부여하는 반면, 우유부단한 자를 경멸하며 밀쳐낸다. (P181)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이름을 딴 그곳, 샌프란시스코는 가난한 어촌에 불과하다. (P198)

1949년에 수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몰려왔는데, 이들을 포니나이너라고 한다. (P203)

오직 고통을 겪어야만 신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음을, (P220)

전류 : 이 발명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공간과 시간의 관계는 세계 창조 이후 가장 결정적인 변화를 겪는다. (P225)

시간과 공간을 정복한 인류가 영원히 하나로 뭉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인류는 이 웅대한 통합을 파괴하려는 광기에 계속 사로잡혀서 자연을 통제하는 바로 그 능력으로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려 드니 안타까울 뿐이다. (P250)

톨스토이 : 그의 삶 전체는 완벽한 구성을 갖추는 동시에 성스러운 후광을 발하게 된다. (P252)

스콧 탐험대 : 우연한 성공과 손쉬운 성취를 보고 고무되는 것은 명예욕에 불과하다. 한 인간이 막강한 운명을 상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이다가 몰락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우리의 마음을 드높이는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P324)

이 기차는 20세기의 가장 위험하고 결기에 찬 혁명가를 싣고서 현재 스위스 국경을 지나 독일을 가로지르며 질주한다. 이 기차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면 시간의 질서는 폭파될 것이다. (P338)

레닌 : 탄환이 명중하면 한 나라를, 한 세계를 날려 버린 것이다. (P340)

이익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결합하지 않고 떼어놓기 때문이다. (P343)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장로교 목사였다. 진리란 단 하나라고 여기고 그 진리를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윌슨도 천성적으로 엄격하고 편협하다. (P344)

그가 자신이 위협한 대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더라면 영원히 이름을 남겼을 테고, 그가 자신에게 충실했더라면 그의 미래에 대한 이념은 항상 되새겨야 할 계명으로 남았을 테지만~~~ (P363)

역사가가 심리학적 통찰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은 ~~~ 츠바이크는 세계사란 그 자체만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파손된 문서이기에 역사가는 상상력을 활용하여 개개 요소들을 끼워 맞춰야 한다고 본다. (P380)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 '광기와 우연의 역사'의 경우 이야기되는 시간과 공간, 그것을 자신의 시대에 비추어 성찰하는 서술자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것을 읽는 독자의 시간과 공간이 서로 반응하며 어우러지기에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독자에게 진실하게 다가오는 건 아닐까? ~~~ 삼중의 시공간이 벌이는 상호작용 때문일 듯하다. (P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