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 (책읽고 내 생각 적기)

예술의 종말 이후(1997->2004) -아서 단토-

by 무우우우니 2026. 3. 17.

자기계발, 경제학, 과학 관련 사실에 중심을 둔 현실적인 책들을 주로 읽다보면 소설, 예술 등의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기준을 가지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서 뭔가 모호한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소설이나 예술에 대한 토론을 할 기회가 생기게 되면 길을 잃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서 단토라는 철학자이면서 미술평론가의 책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책을 읽게 하는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술 관련 책들에서 처음 마주치는 어려움은 장르를 나누는 여러가지 주의와 시대에 따른 분류와 어려운 예술가들의 이름과 작품의 연결 등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이 책은 예술을 역사철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다보니 추가적인 용어의 어려움도 더해집니다. 네러티브(이야기의 구조, 서사구조), 테제(논증을 위해 제시하는 명제), 아방가르드(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 등의 단어들은 들어보기는 했지만, 이 문장에서 어떤 의미로 쓰여지는 지는 명확하지 않아서 찾아보게 됩니다.

이 책이 내 머리 속에 저장된 방식으로 짧게 정리한다면, 아서 단토는 예술의 역사를 통해서 4가지 단계로 구분한다고 이해합니다. 미술사의 시작을 1400년 르네상스 시기로 보고, 그 이전의 예술품(시각예술품, 회화)은 역사전단계로 분류합니다. 이후 바자리의 미술의 진보라는 네러티브 속에서 1400년에서 약 600년 간의 미술사를 현실의 사실을 재현하는 진보 발전의 2단계로 보고, 이후 그린버그가 칸트적인 철학적 시각에서 모더니즘이라는 네러티브로 이어지는 역사를 모네에서 시작해서 앤디워홀의 브릴로 상자로 대변되는 팝업작품의 탄생되기 전까지를 3번째 단계로 나눕니다. 이후 예술을 네러티브의 범위 내에서 구분하는 방식으로는 예술을 정의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단토는 '예술의 종말'이라는 테제로 제시하고, 이후의 예술에 대해서는 예술사적인 시각적 재현이라는 네러티브가 아닌, 의미의 해석이라는 철학적인 인식론으로 분류하게 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기존의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대대적인 전환을 '예술의 종말'이라는 작극적인 용어로 설명합니다.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일으켰을 것이라 생각하고, 종말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예술에 대한 설명을 꽤 긴 문장으로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 단토는 왜 예술의 종말이라는 테제를 제안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좋은 사례는 단토가 뒤상의 <샘> ,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라는 작품들을 접하고 느꼈던 충격과 인식론의 변화가 예술의 종말이라는 테제가 나오게 된 배경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똑같은 브릴로 상자가 상품을 담는 포장이 되기도 하고,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네러티브로 설명할 수 있는 예술의 역사가 종말을 맞이했다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스케치에 따르자면, 모방의 시대가 있고, 이를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뒤따르며, 그다음에는 어떤한 것도 허용되는 우리의 탈역사적 시대가 뒤따른다고 하는 미술사의 거대서사 ~~~ 전통적인 모방은 시대에서 미술비평은 시각적 진실에 기초해 있었다. ~~~ 배타적인 구별에 입각해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관념을 제시하였다. (P112)
바자리 이후의 미술사를 자기검토의 역사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고 모더니즘은 자신의 철학적 본질을 발견함으로써만 확보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 회화 및 각각의 예술을 굳건히 세우고자 하는 노력과 동일시할 수 있게 된 것은 당연히 그린버그 덕분이다. ~~~ 그린버그는 몬드리안이나 말레비치나 라인하르트에 못지 않게 선언문의 시대에 속하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 예술에 대한 철학적 정의를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 모더니즘의 추동력을 특징짓고 있다는 것이다. (P146)

이 책의 중심 주제를 제외하고도 이 책은 많은 정보들과 여러가지 생각할 꺼리를 담고 있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할 경우에 초보자가 자신의 취향을 재현미술을 갖고서 발전시키는 것이 추상미술을 갖고 발전시키는 것보다 더 힘들다. 추상미술은 미술 일반을 볼 줄 아는 법을 배우는 놀라운 방법이다. 형편없는 것으로부터 훌륭한 몬드리안이나 훌륭한 폴록을 식별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옛 대가들을 훨씬 더 잘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P189)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뽑고 싶은 문장이 없었던 장이 없었습니다. 매번 이 문장은 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의 문장은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정보라서 인상 깊었습니다. 예술작품을 보는 눈을 기르는 방법으로 추상미술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위의 문장은 뭔가 위대한 작품들의 공통적인 시각적인 자극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고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러스킨의 예술경험에 대한 내용들을 설명하는 문장들이었습니다.

러스킨은 베로네제의 위대한 그림을 경험함으로써 비전의 변화를 겪었으며, 삶의 철학을 획득했다. (P325)
미술을 일상생활의 비참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자 동시에 그것을 구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P326)
예술경험은 예측불가능하다. 그것은 마음의 어떤 선행상태에 따라 달라지며, 동일한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때에는 심지어 동일한 사람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 우리 자신 속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보는 데 이것들이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P327)

흔히, 삶이 예술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우리가 인식론적인 큰 깨달음과 전환을 얻는 것은 다양한 부분을 통해서입니다. 어떤 경우는 책의 한 문장에서, 어떤 경우는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에서, 어떤 때는 자연의 광대한 한 장면에서, 일출에서, 밤하늘의 별에서도 우리는 비전의 변화와 삶의 철학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시각적 예술작품의 감상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부분이고, 어렵게 느껴지던 예술작품을 조금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한발자국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대상을 예술로 본다는 것은 우리의 눈이 볼 수 없는 무엇 - 예술이론의 분위기, 예술의 역사에 대한 지식, 곧 예술계를 필요로 한다." (P403)

이 문장을 통해서 내가 위의 예술경험을 얻는다는 것은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김하게 됩니다.

사실 현실인식의 내용들 역사의 구속에 갇혀서 보게 된다는 내용 등 이 책에서 나타내는 정말 많은 주제들을 하나하나 잘게 잘라서 흡수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아직은 나의 그릇이 작아서 모든 것을 담는 글을 쓰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어판 서문>

모방 패러다임이 이제 더 이상 강제적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모더니즘이 가지는 의미의 일부이다. ~~~ 모더니즘의 역사는 빼기의 역사였다. 예컨대, 예술가들이 미를 예술의 개념에서 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P12)

예술작품이 그렇게 보여야 하는, 또는 그렇게 존재해야 하는 특별한 방식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간단한 손도구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고, 상품 상자나 쓰레기 더미나 한 줄의 벽돌, 속옷 무더기, 도살된 동물 등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술의 역사가 입증하였을 때, 예술의 본성이 철학적 의식에 충분히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P13)

초기 예술철학 저서인 '평범한 것의 변용'에서 나는 예술을 정의하는 두 개의 조건만을 확인해낼 수 있었다. 첫번째 조건은, 어떤 것이 예술작품이기 위해서는 그것은 하나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 두번째 조건은, 의미는 어떤 식으로든 물질적으로 작품 속에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사물이 작품으로 변형되는 것은 해석을 통해서이다~~~ (P14)

내가 예술의 종말이라 특징지은 상황은 예술의 역사 내에 예술이 취할 수 있는 어떠한 역사적 방향도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어떤 것이 예술작품이 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그것의 재료나 혹은 물질적 형상과는 이제 전혀 관계가 없다. (P16)

<감사의 말씀>

나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체계적으로 연결해서, 이것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는 역사철학과 이것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철학을 서로 맺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 (P27)

핸크 밀론과 그의 아내 주디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가장 놀라운 사람들로서, 그들을 알게 되면 영락없이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P32)

컨템퍼러리 미술은 비범한 실험의 처소가 되었으며, 철학적 상상력이 혼자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풍요롭다. (P33)

1장. 모던, 포스터모던, 그리고 컨템퍼러리

사유의 구조를 의식으로 가져가기 시작한 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바, 이 경우 우리는 그 구조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우리가 누구이고 세계는 어떠한지를 함께 이해하게 된다. ~~~ 세계가 사유에 의해 정의되는 고로~~~ (P46)

과연 회화를 재현의 의제로부터, 재현의 수단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의제로 굴절시켰는가? ~~~ 그린버거의 논지를 따른다면,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로부터 모더니즘 미술로의 이행은 회화의 모방적 특질들로부터 비모방적 특질들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P48)

사실 모더니즘은, 사도 바울의 말을 빌려 쓰자면, 어른들이 "어린애 같은 짓을 그만 두듯이", 이전의 미술사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다. (P49)

하나의 양식상의 시대로서 양식적인 통일성, 아니면 적어도, 하나의 판단기준으로 승화되어 식별능력을 계발하는 토대로 이용될 수 있는 그런 유형의 양식적 통일성의 결여로 특징지어진다는 ~~~ 내가 모더니즘의 종말 이후의 시각예술을 단순하게 탈역사적 미술이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하는 이유이다. (P57)

당신이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한다면 감각 경험으로부터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은 철학으로 향해야 한다. (P59)

2장. 예술의 종말 이후 30년

예술의 역사적 발전에서 모종의 종결이 발생하였다는 것, 서양에서 아마도 600년 동안 지속되었던 놀라운 창조성이 시대가 종말에 도달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로 만들어진 예술은 그 무엇이건간에 내가 탈역사적이라 부르기로 마음먹은 성격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었다. (P67)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한 용어를 빌려와 쓰자면, 그 예술이 만들어졌던 정신과 같은 것에 의존할 수 있을 것이다. ~~~ 나의 역사관과는 다른 역사관들 ~~~ 속에서 이루어지는 비평의 유형과는 아주 다를 수밖에 없다. (P76)

1940년에 미술이 걸어가야 할 유일하게 "참된 길"은 바로 추상이었다. ~~~ "발전의 논리는 가차없는 것이어서 결국 그들의 작업은 추상미술을 향한 또 하나의 발걸음을 구성하였을 뿐이다." 애드 라인하르트는 1962년에 이렇게 썼다. "미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은 미술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추상미술의 50년 동안 단 하나의 목적은 미술을 그 밖의 어떤 것으로서가 아니라 미술로 제시하는 것이며, 그것은 더 순수하고 더 공허하게, 더 절재적이면서도 더 배타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P79)

그 어떤 예술도 다른 예술에 비해 역사적 위임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없다. ~~~ 자신만이 역사적 위임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예술형식이라는 것이 이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P80)

모든 운동은 예술에 관한 철학적 진리의 지각에 의해 추동되었는데, 이때 그 철학적 진리는 예술은 본질적으로 x이며 x 아닌 모든것은 예술이 아니라는 형식을 취하였다. 따라서 각 운동은 상실되었거나 아니면 단지 희미하게 인식되었던 어떤 진리의 재발견, 드러냄, 혹은 계시라고 하는 네러티브의 견지에서 자신의 예술을 바라보았다. (P81)

헤겔은 에술, 철학, 종교가 절대정신의 세 계기를 이루고 있으며 그래서 이 세 가지는 본질적으로 서로의 변형물이거나 동일한 주제를 상이한 음조로 전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P82)

선언문 시대의 요점은, 자신이 철학으로 간주하는 것을 예술생산의 핵심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P84)

'명백히 예술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예술을 창조하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기원"의 1950년판 후기에서 헤겔의 생각이 옳은지 그런지를 말하기는 너무 이르다고 주장했다. ~~~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여전히 우리의 역사적 실존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진리가 생겨나는 하나의 본질적이고도 필연적인 방식인가, 아니면 예술은 이제 더 이상 그러한 특징을 가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P87)

선언문이 표현하고 있는 운동이 예술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발견해내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참된 철학적 발견은 다른 것보다 더 참된 예술은 없다는 것, 그리고 예술이 반드시 그래야 할 단 하나의 방식과 같은 것은 없으며, 모든 예술은 동등하고도 무차별적으로 예술이라는 것이다. (P91)

미술비평이 다원주의 시대에 살아남듯이, 도덕적 비평은 다문화주의의 시대에도 살아남는다. (P98)

3장. 거대서사 그리고 비평의 원리들

우리는 닫힌 역사적 시기의 지평 내에 살고 그 안에서 생산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P108)

두 가지 조건-역사의 종말과 예술의 종말-하에 두 가지 의미의 자유상태가 존재한다. 맑스와 엥겔스가 그리는 인간상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가 될 수 있으며, 특정한 역사적 단계에 존재하는 진정한 존재양식과 진정하지 않은 존재양식 중 전자는 미래를 가리키고 후자는 과거를 가리킨다고 명령하는 어떤 역사적 고통으로부터도 자유롭다. (P109)

"모방"은 아리스토텔레스가 19세기, 아니 족히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주어졌던 표준적인 철학적 답변이었다. ~~~ 모방은 모더니즘의 도래, 혹은 내가 쓰는 용어로 하자면, 선언문 시대의 도래와 함께 하나의 양식이 되었다. (P111)

지금까지의 스케치에 따르자면, 모방의 시대가 있고, 이를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뒤따르며, 그다음에는 어떤한 것도 허용되는 우리의 탈역사적 시대가 뒤따른다고 하는 미술사의 거대서사 ~~~ 전통적인 모방은 시대에서 미술비평은 시각적 진실에 기초해 있었다. ~~~ 배타적인 구별에 입각해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관념을 제시하였다. (P112)

예술은 영원하다는 테제와 예술은 종말을 고했다는 테제 사이에는 어떠한 양립불가성도 놓여 있지 않다. (P113)

보는 것 자체가 변화에 종속되어 있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 보는 것은 믿는 것보다는 소화하는 것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각은 역사를 가진다"고 하는 흔히 곰브리치에게 돌려지는 테제는 "왜 재현미술은 역사를 가지는가?"라는 그의 진정한 토픽과 주의 깊게 구별될  필요가 있다. (P116)

4장. 모더니즘과 순수미술 비판 :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역사적 비전

파노프스키가 도상해석학을 통해 연구했던 일종의 문화적 총체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문화적 측면들인 것이다. ~~~ 상징형식의 철학을 충실하게 따르자면,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규정하는 모든 것 속에서, 즉 우리의 과학과 우리의 철학과 우리의 정치와 우리의 도덕적 행위의 규약 속에서 동일한 근원적인 구조의 표현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140)

칸트는 "경험적인 것이라고는 하나도 섞여 있지 않는" 인식의 양태를 순수하다고 불렀다. ~~~ 회화의 본질을 평면성과 동일시한다. "회화예술이 모더니즘의 기치 하에서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정의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다른 그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것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표면의 불가피한 평면성에 대한 강조였다." (P145)

바자리 이후의 미술사를 자기검토의 역사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고 모더니즘은 자신의 철학적 본질을 발견함으로써만 확보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 회화 및 각각의 예술을 굳건히 세우고자 하는 노력과 동일시할 수 있게 된 것은 당연히 그린버그 덕분이다. ~~~ 그린버그는 몬드리안이나 말레비치나 라인하르트에 못지 않게 선언문의 시대에 속하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 예술에 대한 철학적 정의를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 모더니즘의 추동력을 특징짓고 있다는 것이다. (P146)

모더니즘의 역사는 예술로부터 그것에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하는 정화의 역사 혹은 인종청소의 역사였다. (P149)

예술작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냥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 예술가들이 이렇게 실제 사물과 아주 똑같은 사물을 생산하게 됨에 따라 이 사물을 어떻게 하면 리얼리티 속으로 단순히 붕괴되어 들어가지 않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적 물음이 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던 것이다. (P152)

예술작품과 한갓된 실제 사물 사이의 딜레마가 이제 더 이상 시각적인 용어로는 언명될 수가 없게 되었을 때, 그리고 물질주의적 미학을 벗어나 의미의 미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역사적 명령이 되었을 때, 모더니즘이 종말에 도달하였다. (P162)

5장. 미학에서 미술비평으로

비평가의 과제는 일종의 제7감으로서의 눈의 판결에 항상 기초해서 무엇이 좋으며 무엇이 좋지 않은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제 7감으로서의 눈은 예술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알아내는 감각,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감각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이것을 반응에 기초하는 비평으로 여긴다면, 이 전통은 현재 그린버그에 비해 철학적으로 훨씬 덜 탄탄한 비평가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P183)

"뵐플린이라면 선적인 것이라 불렀을 것" ~~~ 후기 논문에서 그의 어조는 신랄하고 빈정대며 경멸적이다. 이것은 미술에서 어떤 혁명적인 시기가 발생했을 때마다 우리가 인지하게 되는 반응과 같은 유형의 것이다. (P188) -서태지와 아이들, 이승윤-

"내가 생각하기에,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할 경우에 초보자가 자신의 취향을 재현미술을 갖고서 발전시키는 것이 추상미술을 갖고 발전시키는 것보다 더 힘들다. 추상미술은 미술 일반을 볼 줄 아는 법을 배우는 놀라운 방법이다. 형편없는 것으로부터 훌륭한 몬드리안이나 훌륭한 폴록을 식별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옛 대가들을 훨씬 더 잘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P189)

진화생물학자들은 최근에 들어와 대칭성을 다양한 동물종들에게서 나타나는 성적 매력과 관련짓기 시작했다. (P194)

성적 반응이 촉발되는 영역을 떠나 예술미로, 그리고 그가 정신이라 말하는 것의 미로 가게 된다. 폐허라는 것은 시간의 가차없음, 권력의 퇴락, 죽음의 불가피성을 내포한다. 폐허는 무너진 돌을 매체로 삼고 있는 낭만적 시이다. (P196)

6장. 회화와 역사의 울타리 : 순수의 경과

바자리 내러티브로부터 그린버그 내러티브로의 이행은 이용의 차원 속에 있는 예술작품으로부터 언급능력을 가지는 예술작품으로의 이행과 같았다. ~~~ 비평은 의미로부터 존재로, 혹은 약간 느슨하게 말하자면, 의미론으로부터 구문론으로 이행하였다. (P212)

이상적인 비평가는 섬세하고 실천이 풍부하고 개방적이고 비교할 줄 알아야 하며, 따라서 예술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소유하고 좋은 감각을 부여받아야 한다. "어디에서 발견되든 간에 이러한 특질들이 결합된 판단만이 취미와 미의 참된 기준인 것이다." (P217)

아프리카 미술은 위협적인 세계의 어두운 힘들에 맞서는 그것의 능력 때문에 만들어졌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0년 여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 조각들을 보러갔다. 나는 이것들이 음산하고 인상적이다고 생각했다. ~~~" (P219)

미술은 곧 권력의 도구라고 하는 사실이었다. 뒤샹은 미술과 실재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미술을 철학적으로 공민권을 빼앗긴 미술의 시초와 다시 연결시켰다. (P222)

역사가 종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특정 예술작품들을 밖으로 내모는 역사의 경계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제 모든 것이 가능하고, 어떠한 것도 미술이 될 수 있다. (P223)

7장. 팝아트와 지나간 미래

내러티브적으로 구성된 미술사가 종말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P243)

8장. 회화, 정치, 그리고 탈역사적 미술

미술의 목표가 진전함에 따라 획득과 약진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진보 내러티브였다. (P255)

미술품 컬렉션 박물관 : 프러시아의 힘과 프랑스의 패배를 선언하고 독일인들에게 국가적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거대한 19세기 미술관들은 이와 유사한 사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내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새로 독립한 나라들이 미술관을 짓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고 "문화재"를 반환하려는 압력을 가하는 것에도 비슷한 동기가 깔려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P275)

9. 모노크롬 미술의 역사적 미술관

매너리스트들은 자연스러움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우아미를 찬양했다. 그리고 자연스러움에 대한 이러한 경시가, 오늘날 어떻게 하여 그 용어가 코로제의 동시대인인 파르미지아니노에게서 발견되는 극단적인 기교와 동의어가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P299)

T.S 엘리어트의 에세이 "전통과 개인의 재능"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어떤 시인도, 어떤 장르의 예술가도 혼자 힘으로는 자신의 완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의 중요성, 그에 대한 평가는 사망한 시인들과 예술가들에 대한 그의 관계에 대한 평가이다. ~~~ (P303)

10장. 미술관과 갈망하는 수백만의 군중들

그가 미술을 세계관과 인생의 의미를 부여받는 방식으로 경험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미술에 대한 이러한 경험은 많이 있지만, 게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은 러스킨이 1848년의 한 편지에서 아버지에게 묘사하고 있는 경험이다. ~~~ 삼라만상이 만들어내는 삶의 찬란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힘과 아름다움이 이것을 만든 조물주의 명예에 거스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 (P324)

러스킨은 베로네제의 위대한 그림을 경험함으로써 비전의 변화를 겪었으며, 삶의 철학을 획득했다. (P325)

미술을 일상생활의 비참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자 동시에 그것을 구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P326)

예술경험은 예측불가능하다. 그것은 마음의 어떤 선행상태에 따라 달라지며, 동일한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때에는 심지어 동일한 사람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 우리 자신 속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보는 데 이것들이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P327)

뉴욕 타임즈의 저명한 미술평론가였던 브렌슨은 사실 그러한 미술제도들에서 정신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인물이며, 심지어는 이 논문에서도 아담 버버나 존 러스킨이 인정하고 보증해줄 법한 방식으로 그러한 미술제도드링 가지고 있는 미술에 관해 말하고 있다. ~~~ 위대한 그림은 예술적, 철학적, 종교적, 심리학적, 사회적, 정치적 충동과 정보의 예외적인 집중과 합주이다. 더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각각의 색상과 선과 제스처가 사유와 감정의 해류이지 강물이 된다. ~~~ (P330)

철학과 종교에, 삶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매체에 속하는 경험들이다. ~~~ 갈망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아담 버버의 생각으로 돌아가 볼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갈망하는 것은 아니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것은 의미이다. 즉 종교, 혹은 철학, 혹은 마지막으로 예술이 제공해 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의미 말이다. 이것들은 헤겔의 그 엄청난 비전 속에 나타나는 것으로, 그가 절대정신이라 부르는 것의 세가지 계기이다. (P344)

11장. 역사의 양상들 : 가능성과 희극

헤겔 : "예술작품에 의해서 이제 우리 내면에서 환기되 있는 것은 즉각적인 향유가 아니라 우리의 판단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1) 예술의 내용, 2) 예술작품의 표현수단,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서로에 대해 적합한지 적합하지 않은지의 여부를 우리의 지적 고찰에 종속시키기 때문이다." (P353)

사실 나는 <브릴로 상자>>나 <샘>에게 예술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선언의 문제라기보다는 발견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P354)

"모든 시대에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떤 사유는 특정한 발전단계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할 때에 뵐플린이 의도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역사는 예술개념의 내포보다는 외연에 속하는 것으로 ~~~ (P355)

탈역사적인 시대로 진입한다고 해서 역사의 구속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놓여 있는 탈역사적 시대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뵐플린의 생각과 모순을 빚어서는 안된다. 가능한 모든 것과 가능하지 않은 모든 것을 구별함으로써 있을 수 있는 모순의 기미조차 쫓아버려야 한다. (P359)

"시기들" ~~~ 시기라고 하는 게 단순히 하나의 시간대가 아니라 수많은 남녀들에 의해 살아진 삶의 형식들이 그 안에 놓여 있으며, 또 그 안에서 이러한 삶의 형식들이 어떤 복잡한 철학적 정체성을 갖게 되는 시간대임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말이다. ~~~ 철학적 정체성이란 우리가 직접 살아보았기에 사태들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뭔가를 알려주는 어떤 것이기도 하고 ~~~ (P366)

1990년대가 1960년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지각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보다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어제의 내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 우리에게 불가능한 방식과, 우리가 알 수 있는 과거가 우리에게 불가능한 방식 사이에는 여전히 심원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비대칭이야말로 역사적 존재의 구조이다. (P367)

"삶의 형식"이라는 표현은 물론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비롯된다. ~~~ 하나의 예술작품을 상상하는 것은 그 안에서 이 작품이 어떤 구실을 맡고 있는 어떤 삶의 형식을 상상하는 것이다. (P368)

삶의 형식에 관한 하나의 철학적 요점을 특별하게 강조하고 싶다. 즉 삶의 형식이란 그저 우리가 알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직접 살아진 것이다. 예술이 삶의 형식 속에서 어떤 구실을 맡으려면 ~~~ 꽤 복잡한 의미체계가 있어야 한다. (P369)

게르치노가 파악했고 뵐플린이 표현했던 바인, "시각은 역사를 가진다."는 규칙을 그가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P372)

파란색의 호소력은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떨어지지만, 검정색은 수입이 떨어질수록 더 큰 호소력을 발휘한다. 즉 연 2만불 이하를 버는 사람들은 7만 5천불 이상을 버는 사람들에 비해 세 배나 검정색을 선호하며, 7만5천불 이상을 버는 사람들은 2만불 이하의 사람들에 비해 초록색을 세 배나 좋아한다. (P383)

예술작품의 존재방식과 예술철학의 가능성이 역사적 양상에 인질로 잡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브릴로 상자>를 예술의 종말, 혹은 예술사의 종말을 말해주는 하나의 신호로 해석한다. (P400)

"어떤 대상을 예술로 본다는 것은 우리의 눈이 볼 수 없는 무엇 - 예술이론의 분위기, 예술의 역사에 대한 지식, 곧 예술계를 필요로 한다." (P403)

실제 사물의 경우와는 달리 예술작품은 그렇게 존재하도록 이론화하는 것에 의해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토는 예술작품 및 그 작품에 대한 감상이 이론의존적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은 관찰이라고 하는 것이 언제나 이론에 의존하게 마련이라는 과학철학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다고 주장한다. (P404)

역사적 양상의 문제를 제기할 때 단토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첫째, 한 시기에 예술작품일 수 있는 것이 다른 시기에도 예술작품이 될 수는 없다는 것과, 둘째, 예술사를 통해 집행된 역사, 즉 예술의 본질이 필요충분조건의 견지에서 고통스럽게 인식된 역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P406)

예술사의 거대 내러티브가 처음에 모방의 시대와 그 다음에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거쳐 탈역사적 시대로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P416)

헤겔의 정신의 목표는 자기인식, 자기실현이고, 이것은 바로 철학이다. 그리고 헤겔에게 예술은 자기인식을 향해가는 이 단계들 중의 하나이다. (P424)

곰브리치는 미술을 "만들기(making)"과 "맞추기(matching)"로 보았으므로 뒤샹의 <샘>은 만들기나 맞추기와 무관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에 일치시키기 곤란했던 것이다. (P43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