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다시 돌아오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뭔가 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독서를 시작할 즈음에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쉽지만 아름다운 문장, 책에 목숨을 거는 이덕무라는 사람의 매력, 그 친구들과의 우정을 반짝이는 글자로 씌어져있다는 것으로 굉장히 좋은 책이라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책들도 읽고, 과학서적, 소설, 비문학 철학서 등을 읽어서 꽤 많은 책을 읽은 편이겠거니 독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즈음에 독서모임에 대한 제안이 와서 내가 발제할 수 있을 만한 책들을 찾다보니,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독서에 대한 흥미와 목표를 설정하는데 이 책은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분류를 찾다가 한참을 웃었습니다. 이 책은 교보문고 분류상 '동화'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가장 감명깊게 읽을 책들은 동화수준인 것 같다는 생각에 독서에 대한 자신감을 얼른 내려놓게 됩니다.
그렇지만, 다시 읽으면서 삶을 사는데 필요한 중요한 지침들은 모두 이 책 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뇌과학에서 얘기하는 편견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삶에서 드러나는 편견의 폐해들은 이 시대에 유학서적을 읽고 스스로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과학적 지식과 실험에서 도출되는 데이터만을 맹신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렇게 옛사람들의 글을 정리해서 읽다보면 우리가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더 나아진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조금은 흔들립니다. '전기라는 힘을 제외한다면 우리가 가진 문명의 대부분은 사라지고, 단지 사유만이 남는 것은 아닐까?'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다가 얄팍한 내 지식내에서 한계짓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들을 선별하다 보니, 이덕무와 그 친구들이라는 사람들이 조선 정조시대 실학을 이끌었던 주요한 학자들을 모두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뛰어난 사람들이 비슷한 신분상의 굴레 속에서 인근에서 살 수 있었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지금의 수도권 인구집중의 이유도 이 책은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우수한 사람들은 수도권에서 거처를 마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에 떠도는 한가지는 친구라는 존재였습니다. 나의 불행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내가 의존할 수 있는 독서라는 행동습관과 그 독서에 대해서 인정해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친구가 이덕무라는 사람의 인생이 고통스럽게 끝날 수 있었던 것을 행복한 결말로 이끌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안도현의 '연탄재'처럼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일본의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라는 책의 초입부분은 시간이 지나도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모르겠지만, 그 내용은 "나는 부엌을 좋아한다. 나는 부엌에서 생을 마감해도 좋겠다."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책을 읽고, 여행하다가 생을 마감해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여 문을 내 보았습니다. (P7)
눈과 눈이 마주치는, 책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 (P13)
책과 마주앉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지는 못한 것 같다. (P14)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책 한 권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가로 한 뼘 남짓, 세로 두 뺨가량, 두께는 엄지손가락의 절반쯤이나 될까. 그러나 일단 책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했다. 넘실넘실 바다를 건너고 굽이굽이 산맥을 넘는 기분이었다. (P21)
나만의 편안한 공간을 얻게 된 감격에 울먹울먹 속이 일렁여서 그런지, 그날따라 술기운이 빨리 올랐다. (P49)
나도 그리 살고 싶었다. 달리 누리는 것이 없어도 좋으니 그저 약간의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책 속의 글귀들로 머리와 가슴을 채우며 고요히 한자리에서 살고 싶었다. (P50)
벗들도 나처럼,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눈부신 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는지 모른다. (P58)
상심한 박제가에게 : 그의 마음을 내가 알고, 나의 마음을 그가 알진대 굳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 온종일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그와 마주 앉아 있노라니 불편한 마음이 스르르 사라지는 것 같다. (P66)
차라리 바람처럼 구름처럼,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혼자 훨훨 떠돌아다니고 싶습니다. (P71)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가난, 앞날에 대한 걱정, 서자라는 운명의 굴레도 조금은 헐거워지는 듯하였다. (P72)
한 번도 내가 그 운명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나라고 제깟 운명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겠느냐라니, 과연 박제가다운 말이었다. (P73)
공통의 운명을 짊어진 채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벗들이 있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를 죄고 있는 운명을 완전히 벗어 던질 수 없다고 해도 좋다. 다함께 손잡고 운명이라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는 그 든든함이면 충분하였다. ~~~ 박제가는 우리에게 그렇듯 서늘한 바람같은 벗이었다. (P74)
제가 마음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볼수록, 모든 사물은 제 모습을 더 세밀하게 보여 주니까요. (P75)
세밀히 보는 법
'붉다'는 그 한 마디 글자 가지고
온갖 꽃을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
꽃술도 많고 적은 차이 있으니
꼼꼼히 다시 한 번 살펴봐야지. ~~~ 얼버무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세심하게 바라보고 관찰하여 구체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P76)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함께 흥분하여 소리 높여 잘잘못을 따지거나, 우스갯소리로 울적한 마음을 한번 비틀어 밖으로 날려 보내는 것. 유득공은 주로 두 번째 방식을 썼다. (P85)
사랑이 담긴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의 가슴에 따스한 피를 돌게 했다. 나의 벗 유득공은 그러한 따스함을 세상과 벗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P89)
유득공 : "나도 내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무언가를 붙들고 싶습니다. 내가 끝까지 부여잡은 그것이, 후대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탄뿐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94)
그가 몰고 오는, 낯선 곳의 흙먼지가 묻어 있는 바람이 좋았다. ~~~ 호기심과 두근거림, 설렘이 있는 여행 본래의 길이었다. (P106)
이서구는 당당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솔직히 그가 부러웠다. (P132)
서로의 마음속에 담긴 생각을 먼저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같은 나라 사람들과는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고 적다는 이유로, 가진 것이 있고 없다는 이유로, 서로가 속한 당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미리부터 사람들 사이에 금을 그어 놓았기 때문이다. (P150)
스승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이 고맙고도 감격스러웠다. (P154)
한 사람의 일생을 놓고 보면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변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는 스스로가 중심인 것이다. (P159)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싶은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물을 받아들인다.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 두고, 그 밖의 것은 물리치고 거부한다. (P176)
지난날의 선입견에 갇혀 있으면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 선입견은 결국,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물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편견이기도 하다. (P177)
드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기도 했다. 세상의 전부를 보고 배우는 것이 굳이 우리가 아니라 해도 좋다. (P194)
조선이 풍요롭고 튼튼해지는 것, 그 안에서 백성들의 살림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절절한 심정이었다. (P202)
규장각 서고에 가득한 책들 속에서 좀벌레로 늙어 간다고 해도, 이 세상 어딘가에 나의 자리가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 수 있었다.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세상의 빛을 향해 나온 책들처럼, 벗들과 나의 시대는 그렇게 새롭게 열리고 있었다. (P210)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노라면 스스로가 빚어 낸 삶이 희미한 빛을 낼 때가 있지 않을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버님과 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담긴 희망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P245)
'옛날'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채 기억 저편에서 가물가물해질지도 모른다. ~~~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제몫의 세월만큼은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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