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1932) -올더스 헉슬리-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얘기할 때, 원전으로 인용이 많이 되는 소설 중 하나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이다. 독서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이 책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 내용은 예측가능하다는 생각에 시간을 내어서 읽지는 않았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시간이 지나면, 현대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예측과 비교해서 그다지 충격적인 내용일 것이라는 기대를 접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읽는 것을 미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책이 나에게 다가왔다. 아는 사람 중에서 책을 정리하면서 이 책을 나에게 양도해주었다.
책을 가지게 된 이후로도 한동안 이 책을 읽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다른 독서리스트에 우선순위를 내어주고 있었다. 2025년 3월 30일 꽤 오랫동안 지지부진하며 잡고 있던 벽돌책을 완독했다는 기쁨에 400페이지짜리 책은 간단히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들었다.
책의 첫 부분은 어색한 용어(부화본부의 국장, 대용혈액, 습성훈련 등)와 거북스런 개념들(인공부화장치, 난자 하나로 여러개의 개체를 만들어내는 방식 등)에 대한 설명으로 미래 사회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이것보다 훨씬 디테일한 설정의 영화들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용어도 어색하고, 그런 장치의 작동도 미래기술이라기보다는 평행우주의 뒤처진 시대의 기술같은 묘사에 목입을 방해했다. 이야기가 어렵지는 않다는 점에서 얼른 읽어버리자는 생각으로 속독으로 읽게 되었다.
주요 인물로 나타나는 캐릭터들도 조금 특이하여, 공감가는 주인공들이 아니었다. 레니나 크라운, 버나드 마르크스, 헬름홀츠, 야만인 존, 어머니 린다...
세계관에 익숙해지고 난 이후 책을 다시 한번 더 읽게 되면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게 되면 항상 여러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몇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1. 버나드는 어린 시절의 학습에도 불구하고, 레니나에 대해 개인적인 호감을 느끼고, 레니나에 대해서 성적대화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질투를 느끼듯이 행동하는데, 그런 학습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는 무었이었을까?
2. 헬름홀츠와 버나드 마르크스는 어떻게 서로 친구가 되었을까? 헬름홀츠는 버나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어보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과 다름으로 인해서 느끼는 고독감이 아니었을지?
3. 린다가 멕시코의 보호구역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들인 존을 키우게 된 상황의 부적절한 연계와 무계연성이 이해하기 쉽지는 않았다. 부화국장은 어떻게 다양한 피임을 벗어나서 자식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4. 존은 레니나를 사랑하면서도 상호공유(자유 성관계)에 대한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서로의 감정이 교차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무엇에 대한 표현일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오해와 오해의 중첩으로 인한 이해라는 잘못된 가정이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일까?
5. 무스타파 몬드의 '멋진 신세계'에 대한 설명은 어떻게 이런 세계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통제관들로 이루어진 각국의 경쟁은 없을까? 이런 멋진 신세계와 경쟁하는 다른 세계관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무스타파 몬드 : 세계는 이제 안정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행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잘살고,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P333)
이 책이 씌여진 1932년을 생각해보면 1차세계대전이 1918년에 끝나고, 2차대전이 시작되기 전의 전간기라 불리는 잠시간의 평화의 시간이었다. 이때 소련에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1917년)이 있었고, 산업혁명의 수혜를 보는 사람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 간의 빈부격차가 커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위기상황으로 보는 것이 당시 지식인의 시각이었을 것이라 예측된다.
올더스 헉슬리가 이상사회인 신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할분담이 명확한 계급사회(알파, 베타, 앱실론~~~), 모든 인간은 서로 공유한다는 사유재산의 소멸, 생활에서의 어려움을 없앤 풍부한 여가생활, 감정을 지배할 수 있는 약 소마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거나, 욕구가 없다고 학습시킴으로서 갈등을 없앤다. 부정적 감정에서는 소마라는 신경안정제, 마약 같은 약의 투입을 통해서 감정을 통제한다.
올더스 헉슬리가 이런 이상사회를 상상하게 된 배경이 바로 산업자본주의의 폐해인 빈익빈 부익부와 공산주의 혁명으로 양분되고, 전쟁으로 상처입는 유럽의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다가 나온 것이 아닐까?
계급갈등의 구조와 사유재산의 소멸은 마르크스의 공산사회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의식적 세뇌학습, 감정을 지배하는 소마라는 약은 이상적인 공산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중요 가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의 바로 직전에 읽었던 전후유럽 (Post War 1945~2005)을 통해서 당시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막시즘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의 인정을 이해하고 나니 이 책의 가정들이 이상적인 공산사회의 가정과도 유사하게 느껴진다.
이런 문명사회에서 살던 린다가 문명 이전의 보호구역의 현생인류와의 삶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장면, 보호구역에서 나고 자란 존은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와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 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적응과 부적응을 통해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옳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책은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준다.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변화와 도전과 평화와 안전이라는 것이 동시에 얻어질 수는 없는 것인지?
'멋진 신세계'라는 세상이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인간은 수면학습을 통해서 통제될 수 있는 기계장치가 아니고,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을 것이고, 계급에 대한 수긍도 인간이라는 존재내에서 성립될 수 있는 학습치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소마라는 마법의 약이 발견될 것 같지도 않고, 그것을 인류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것 같지도 않다.
단지, 내가 경험한 적이 없던 문명세계에 놓여졌을 때, 존 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로 끝을 내게 될까? 아니면 내가 어렸을 때 가졌던 도덕 관념을 현대의 문명세계의 도덕관념으로 치환하여 살 수가 있을까?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에 둘러쌓인다면, 그 환경에 자연스럽게 적응될 것이라는 예측으로 존의 비극적 결말에 대해서는 반대적 입장을 가정해 본다.
이 소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기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책과 시끄러운 음향, 꽃과 전기 충격이 만나 짝을 짓는 연상 작용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 인간이 맺어놓은 것을 자연은 떼어놓을 힘이 없다. (P55)
레니나와 패니의 이야기 : 모든 인간은 서로 공유해야 하니까요 (P87)
헨리 포스터와 베니토 후버 같은 남자들을 얼머나 괴로울 만큼 부러워했던가! 앱실론이 명령에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해 소리를 지를 필요가 전혀 없는 남자들, 자신의 신분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들, 신분 조직 속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게 행동하면서,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편안하고 즐겁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는 사람들. (P117)
헬름홀츠 왓슨 : 운동과 여자와 단체 활동 따위가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인식을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P120)
버나드 마르크스 : 그는 과거에 자주 어떤 커다란 시련, 고통, 박해에 맞서게 되면 어떨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었고, 심지어는 그런 고난을 갈망하기까지 했었다. ~~~ 그것은 위협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ㅇ낳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P170)
남들하고 다른 사람은 외롭기 마련이예요. (P217)
인생의 목적이란 복지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강화하고 정제시키는 무엇, 지식을 확대시키는 무엇이라고 믿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P272)
어머니의 죽음 : 또 다른 구더기들이 이제 그의 슬픔과 참회에 달라붙어 사방에서 기어 다녔다. (P318)
"여러분은 자유롭고 인간다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인간성과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합니까?" (P323)
무스타파 몬드 : 세계는 이제 안정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행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잘살고,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P333)
안정이라는 불안정만큼 그렇게 요란하지는 않습니다. 만족한 상태는 불우한 환경에 대한 멋진 투쟁의 찬란함도 없고, 유혹에 대한 저항, 그리고 격정이나 회의가 소용돌이치는 숙명적인 패배의 화려함도 전혀 없습니다. 행복이란 전혀 웅장하지 못하니까요. (P335)
나는 진실에 관심이 많고, 과학을 좋아해. 하지만 진실은 불편한 위협일 따름이고, 과학은 공공의 위험이야. 그것은 혜택 못지않게 위험을 주었어. (P344)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P362)
기술과 인내를 요구하는 무엇을 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순수한 기쁨이었다. ~~~ 장대를 깎아 거의 다 모양을 갖추었을 때 그는 자기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꺠닫고 깜짝 놀랐다. (P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