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2015.7) -이언 맥큐언-
소설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어렵게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이 책으로 독서토론을 하고 난 이후에 뭔가 소설을 읽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다.
이 책은 50대의 판사인 피오나의 얘기이다. 피오나는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노력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판사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피오나에게 잭이라는 남편이 멜러니라고 하는 여성과의 육체적 사랑을 인정하고 모노가미(일부일처제)에서 폴리아모리(자유결혼제도??)로 변경을 희망하는 부분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설에서 처음 이게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는 데까지 걸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소설도 약3분의 1정도를 읽고서야 피오나가 어떤 사람인지 잭이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피오나는 잭과의 갈등으로 폴리아모리에 대해 거부하며, 멜러니와의 관계는 본인과의 관계의 단절임을 명확히 밝히는 명쾌한 판단력이 훌륭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게 명쾌한 판단력을 가진 피오나 조차도 개인의 불행으로 인한 행동과 판단의 미묘한 변화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피오나는 평소보다 더 일에 몰두하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안하던 판단 대상의 병원방문까지 진행합니다.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애덤 핸리라는 소년에 대한 판결이 이 책의 중심 스토리 라인이라고 생각된다.
애덤 핸리는 여호와의 증인으로 백혈병을 앓고 있지만, 타인의 피를 수혈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한다. 병원에서는 미성년의 애덤을 살리기 위해서 수혈가능하도록 법원을 판단을 요청하고, 부모들은 종교적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하고, 애덤도 역시 자신의 의지로 수혈받기를 거부한다. 보통의 판사라면 서류만으로 결정짓고 판결을 내릴 텐데, 피오나는 애덤을 만나러 병원을 방문한다. 이때, 방문을 하는 피오나의 마음 상태에 영향을 끼친 것은 잭과의 가정불화로 인한 자기자신에 대한 자존감 하락을 회복하기 위한 본인의 일에 대한 몰입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애덤을 만나고, 애덤의 시를 읽고, 애덤의 바이올린에 맞춰서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애덤의 내면에 담긴 삶에 대한 욕구를 찾고 수혈가능을 판결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더할 나위없는 훌륭한 판사로서의 판단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애덤이 살아나고 난 이후 보내온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는 것, 애덤이 찾아왔을 때 그의 상태를 명확히 파악했음에도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을 거부한 것, 개인적인 상황에서 애덤에게서 받는 마음에 흔들림이 있었던 것 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상상하게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판사라는 직업, 특히 영국에서 판사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간접체험하게 할만큼 디테일하게 조사했다는 점에서 저자에 대한 감탄을 하게 만든다. 또한, 세부적인 상황을 통한 간접적 심리묘사가 탁월하고 그 행동을 통해서 피오나와 잭과 애덤이 느끼는 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적은 문체가 놀라웠다.
그 이외에도 다른 사라들이 얘기하는 소설적 장치들, 이름, 직업, 구성의 정교함 등을 듣고 다른 소설을 읽을 때도 이 책의 독서토론 상황을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뭔가 조금 알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주 세심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적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이 책을 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스포일은 맞지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을 통해서 나도 어떤 판단을 할 때, 나의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다시한번 리마인드하고 그 판단이 상황에 의해서 얼마나 편향될 수 있는지는 이해하고 판단해야겠다는 결심 또는 다짐을 하게 된다.
또한, 세계관이 흔들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서도 얘기를 많이 나눴다. 너무 딱딱하고 유연하지 못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면 그 세계관이 흔들릴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가치관을 유연하게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생각, 가치관, 세계관에 대해서 수용할 수 있는 평화로운 가치관 형성을 위해서 타인과의 의견 교류가 필요할 것 같다.
이 글을 적는 순간에 만약 인공지능이 생겨나고, 그 인공지능의 가치관 또는 세계관에 대해서 인류가 관여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만큼 무서운 일도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치관의 수용, 변경, 발전이 가능하도록 생각을 유연하게 만드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하겠다.
그녀에게는 관습적으로 옳은 것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있었다. (P13)
미리 생각해보지도 않고 둔 자충수. ~~~ 그가 머무른다면 모욕, 그가 떠난다면 심연. (P32)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게 하는 데는 가정사의 풍랑만한 것도 없다. (P68)
그녀가 바보라는 사실을. 피오나가 가끔 정조라 부르며 즐겨 점검하는 자신의 내면상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쓸쓸함과 울부의 혼합. 또는 갈망과 분노의 혼합. 피오나는 그가 돌아오길 원했고, 그를 다시는 보지 않기를 원했다. 수치심도 거기에 섞여 있었다. (P126)
자신이 잭의 귀환에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았다. 정말 단순했다. 그건 실망이었다. 남편이 조금만 더 오래 나가 있었으면 했던 마음. (P178)
판사님의 그 고요한 목소리를 들어야 해요. 판사님이 그 맑은 정신으로 저랑 이 문제를 의논해주셔야 해요. (P190)
순회법정 : 대개 역사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의미 있는 인상적인 시골 주택들이었고.... (P192)
피오나는 결혼생활의 단층을 따라 극도로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느꼈다. ~~~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커피에 우유를 붓던 잭이 뒤로 돌아 손에 든 잔을 아주 살짝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 잭은 소나무 탁자에 잔을 내려놓더니 그녀 쪽으로 이삼 센티미터 정도 밀었다. (P196, 197)
그런 마음이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이란 걸 그때 알았어요. 평범하고 좋은 거요. 하느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그건 그냥 바보 같은 짓이었어요. (P224)
쓰디쓴 씨앗처럼 단단하고 어두운 진실이 곧 드러나리라는 쪽이 더 믿기 쉬웠다. (P234)
법정을 벗어나면 내 책임도 끝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이는 나를 찾아왔고, 그 애가 원했던 건 모든 사람이 다 원하는 것, 초자연적인 힘이 아닌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건 '의미'였어. (P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