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사람들(1983) -M 스캇 펙-
이 책은 내가 읽는 스캇 펙 박사의 두번째 책이다. 전작인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은 자기개발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느껴진 데 비해서, 이번의 책은 정신분석과 상담심리를 종교적인 측면과 연결시켜서 주장하는 듯하다.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도 종교적 색체를 강하게 보여줬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신경증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특정한 분류로 "악"이라는 특성을 가진 질병분류를 표준질병 분류표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친다.
역시, 기독교를 믿는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너무 종교적이라 이해하는데 거부감이 끼어드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이 세상이 선과 악의 전쟁이고, 악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스캇 펙 박사의 세계관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씌어진 글이다.
책을 읽으면서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서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내가 가진 무의식에는 어떤 주장들이 쌓여있을 지, 그것이 실질적인 나의 생활에서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탐색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나오는 <악>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특성을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에서 찾고 있다. 전작에서는 게으름을 중심적으로 놓았던 데 반해서, 이번 책에서는 나르시시즘, 즉 교만에 의해서 악에 빠져들게 되는 특성을 설명하는 것에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할 때, 부모님을 어떤 사람을 만나는 지는 운명이다. 그 부모가 자기성찰을 통해서 뚜렷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 자녀는 좋은 출발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녀도 아무런 노력없이 그 부모처럼 좋은 자아상을 가질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자녀를 그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부모로써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부모가 상처가 있고, 자신이 살기 위해서 거짓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말하는 악에 물든 사람이라면 아이는 스스로의 건강한 자아상을 찾기위해서 훨씬 힘든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가난의 대를 나의 선에서 끊겠다" 는 말이 굉장히 좋게 들리던 때가 있는데, 세대로 이어지는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가 얼마나 혹독히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하고, 자신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자기 방어적인 행동이 타인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을 막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자신을 살펴서 더 나은 자신으로 만드는 방법의 원형을 기독교의 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원형으로 내세우고 있다. 철학에 의해, 이성에 의해서 신의 존재가 부정되고, 과학을 통해서 신이 대체되고 있는 현 시대에서 그리스도의 행동과 생활방식과 생각의 방식을 통해서만 무의식을 통해서 세대간에 흘러내려 오는 타인을 도구로 사용하여 나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악의 마음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주장이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신이 있다는 사람과 신이 없다는 사람과 신은 있지만, 그 신이 우리가 믿는 종교의 신은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중의 어느 쪽인가를 살펴보면 신은 있지만, 인간이 만든 신은 아닐 것이라는 부류이다. 기독교를 믿고 있지는 않지만,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서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말에는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인간과 우주는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 하나님과 악마 사이의 팽팽한 대결 속에 끼어 있다. 이 대결의 전투장은 인간 개개인의 영혼이다. 인생의 의미는 전적으로 이 전투에 달려 있다. (P62)
에리히 포럼 :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과 분리시켜서 시간자형 성격유형으로 제시하였다. 앞의 것은 다양한 인생 유형과 개인의 독특성을 인정하고 키워 주려는 사람인 반면, 뒤의 것의 목표는 다른 사람을 복종적인 기계로 바꾸고 그들로부터 인간성을 박탁함으로써 생명의 불편한 요소를 모두 회피하려는 데 있다.~~~ 악이란 인간의 안 또는 밖에 존재하는 생명이나 생명성을 죽이고자 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선은 그 반대다. 선은 생명과 생명성을 늘어나게 하는 것이다. (P73)
아픈 아이 뒤에는 아픈 부모가 있다는 것이다. 부모 생각에는 아이들을 고쳐야 한다고 판단할지 몰라도 대개 서둘러 고쳐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는 부모 자신들이다. ~~~ 자녀들에게 있어서 부모란 하나님과도 같은 존재다. 그~~~ 그들은 자기 부모가 살아가는 방식 그대로 자기들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P105)
사춘기 안팎의 아이들인 경우에는 정신활동의 대부분이 무의식적인 것들이기 십상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거의 못한 상태에서 느끼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P109)
치료엔 언제나 현실에 부응하지 않는 자아상을 바로잡는 작업이 포함되는 까닭에.... (P111)
자신의 역전이가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를 가려내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치료자는 환자뿐 아니라 동시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분석해야만 한다. (P115)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자신에 대해서 비참하게 느끼는 것,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악을 행하지 않는다. 자신을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동기에 자주 마음이 걸리는 사람, 자신의 본성이 드러나게 될까 봐 마음 졸이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는 악은 결코 저질러지지 않는다. 이 세상의 악은 영적인 특권층에 의해 저질러진다. (P128)
비록 적지 않은 고통이 따른다 하더라도 역시 죄의식은 참으로 소중한 축복임에 틀림없다. 악을 향하려는 본능적 성향에서 우리를 건져 줄 유일한 유효 안정 장치이므로, 성 테레사는 ~~~ "자신을 거스르는 수고를 묵묵히 감내하려는 자만이 예수님께서 기쁘게 거하시는 처소가 될 수 있다." (P129)
악은 죄책감의 결손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회피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P137)
"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다. 생소한 정신 의학 용어 '악성 나르시시즘'을 흔히 우리는 '교만'이라고 부른다. 교만은 악의 뿌리다. ~~~ 교만이 진짜 의미하는 바는 자신의 내적 죄성과 불완전함을 터무니없이 부정하는 그런 교만, 날마다 뻔히 보이는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려 주어도 그것을 극구 부인하고 심지어 반격까지.... (P143)
일단 비굴하고 비겁한 행동을 하게 되면 그것들은 계속 나를 약하게 만들어 점점 더 비굴한 행위를 하게 되며 결국 내게서 자유를 빼앗아 가 버리고 만다. (P147)
악은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심지어는 합리적인 것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전에도 말했듯이 악한 사람들은 위장술의 도사이다. (P192)
성인 : 그들은 현명하고 지각이 있으며, 생을 신나게 즐기면서도 죽음을 지견하고 받아들이며, 그들은 생산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창조를 위해 일하며, 동료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의도에서나 결과에서나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끌어 간다. (P235)
자신의 자아 영역을 확고히 하고 남의 자아 영역을 제대로 인정해 주는 것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의 한 특성이자 선결 요소다. (P256)
부모가 자녀들의 독립을 오히려 막는 일은 부모로서의 책임에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는 물론, 부모 자신의 미성숙하고 자기 중심적인 욕망 때문에 자녀의 진정한 성장을 희생시키는 일이 되고 만다. 그것은 파괴적인 것이다. (P276)
이제 문제는 더 이 상 빌리가 어떻게 어머니의 거미집에서 빠져나오느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정체는 바로 자기 자신의 정체인 까닭에 이제 어떻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느냐가 문제였다. (P279)
전문화가 집단의 미성숙과 집단 악의 잠재성에 이바지하는 양상은 몇 가지 기제를 통해 다양하게 나타난다. ~~~ 그것은 양심의 분해다. -책임감의 분산- (P416)
인간의 위대함을 재는 최선의 척도는 고난에 대처하는 역량일 것이다. (P462)
일반덕으로 개인은 어떤 집단에 소속하게 되면 정서적으로 퇴행하는 성향이 아주 강하다. ~~~ 이상적인 성숙한 치료 집단은 모두 지도자들로 구성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P427)
집단의 응집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외부의 적에 대하여 집단의 증오와 적개심을 계속 불붙여 주는 것이다. (P431)
전문집단은 나르시시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즉 다른 동질성 집단들과의 관계에서 자신들을 우월한 위치에 놓고 자신들만이 옳다는 식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P435)
우리는 앞에서 악이란 나르시시즘이 위협을 받을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되풀이해서 얘기했었다. (P450)
태도를 바꾼다는 것은 꽤 많은 수고와 작업이 요구된다. 그 과정은 끊임없이 자기회의와 자기 비판의 자세를 힘써 지키려는 것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내가 지금껏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조리 그릇된 것일 수도 있다는 뼈아픈 인정으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P456)
자유의자야말로 인간의 궁극적인 실존 요소다. (P464)
인간 본성으로부터 악의 쌍두마차인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을 뿌리 뽑는 작업에서 훨씬 더 발전된 시기가 올 때까지 ~~~ (P474)
선과 악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곳도 바로 개인의 고독한 마음이요 영혼인 까닭이다. (P478)
자신의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그에 따라 자신을 정화하는 일이 각 개인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한 개인적 정화는 각 개인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세계의 구원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터득한 상태에서, 그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정화해 가게 될 것이다. (P480)
시인 키이츠 : 이 세상을 '영혼을 빚어 내는 골짜기'라고 묘사했다. (P500)
나는 너를 안다. 내가 너를 지었다. 나는 네가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너를 사랑했다. 너도 지금은 알고 있다시피 너는 나의 사랑을 버리고 도망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얼마나 멀리 도망갔든 그건 하나도 문제가 안 된다. 너에게 도망갈 힘을 준 것이 바로 나다. 그러나 결코 네가 아주 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너는 용서받았다. 너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다 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네가 괴로워할 때면 나도 같이 괴로워한다. 나는 또한 네가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만들어 왔던 네 인생의 추함들을 어떻게든 숨겨보려고 하는 그 모든 작은 기술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너는 아름답다. 너는 스스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속사람이 아름답다. 너는 아름답다. 왜냐하면 오직 너뿐인 그 독특한 인격으로서의 너 자신을 통하여 이미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나의 거룩함의 아름다움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또한 내가, 오직 나만이 앞으로 되어질 너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약함 중에서 온전해지는, 사람을 바꾸는 내 사랑의 능력을 통해서 너는 완벽하게 아름다워질 것이다. 너는 변경될 수 없는 독특한 방법으로 완벽하게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것은 너 혼자서 하는 일도 아니고 나 혼자서 하는 일도 아니며, 너와 내가 함께 해 나가는 일이다. - 찰스 E 로빈슨 목사 <Known>- (P507~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