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2012.3.6)
독서 동호회의 회원분이 추천해주는 책이었는데,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기억해뒀다가 빌려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내 마음에 떠오른 한문장은 <미스터리 기억불신 철학소설>이라는 문구였다. 책이 시작하는 첫페이지의 문장을 읽을 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이후 다시 읽기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저자의 예상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끝나자 마자 다시 돌아가서 읽게 된 첫페이지는 이 책의 인상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선사했다.
여러 자기개발서적이나 동기부여 강의에서 우리의 인식(듣고, 보고, 맛보고, 기억하는 것)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할 정도로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나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 더 큰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경험했던 모든 순간들은 정말로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그런 일들이었을까? 내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은 실수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 나를 만나서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나의 행동에 대해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생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 책의 끝부분에 문학에 대한 정의가 굉장히 기억에 남았다.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
'과연 작가의 언어적 역량이 독자의 사고와 감각을 넓힐 수 있는가' 하는것. (P258)
줄리언 반스는 명확하게 문학이란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한권의 짧은 책으로 바로 위의 문장을 충족시켰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문학계에 3대 상이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콩쿠르상, 맨부커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에 들었던 한강이라는 한국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것을 듣고도 얼마나 대단한지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나의 무식함에 조금 부끄러워진다.
이 책을 처음에 읽으면서는 꽤 조숙한 학생들의 성장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점점 끝으로 나가갈수록 미스터리가 되었고, 마지막에는 앞에 읽었던 내용들에 대한 나의 기억을 다시 되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이해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도 에이드리안, 베로니카, 그 어머니와 화자의 정확한 관계를 모르겠다.
이 책을 읽었음에도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많이도 남아있다.
1. 과학반 6학년의 롭스의 자살, 2. 에이드리안의 자살, 3. 에이드리안 일기장이 왜 화자에게 유산으로 넘어왔는지? 4. 베로니카는 화자에게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인지, 5. 베로니카의 어머니와 화자와는 어디까지 연결된 것인지?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번 읽고는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읽자마자 알게 되었다. 저자는 150여페이지의 이책에 대해서 너무 짧은 소설이라는 비평에 대해서, 이 책은 두번이상 읽기 때문에 300페이지 이상의 긴 소설이라고 반박했다는 얘기를 읽었는데, 나는 저자의 말에 거의 공감한다.
굉장히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은데,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야 할지....다른 책으로 넘어가야 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이다.
그때 우리는 소싯적의 한 순간이라도 그들에게 우리 같은 때가 있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투항해버린 연장자들보다는 우리가 삶-그리고 진실과 도덕과 예술-을 더 확실하게 포착했다고 믿었다. (P25)
이제까지 소설과 무관하면서도 그에 준하는 삶을 산 사람은-롭슨을 제외하면- 에이드리언이 유일했다. (P31)
마치 우주의 작은 레버가 눌리는 바람에 바로 이곳에서 불과 몇 분 동안, 자연이 뒤집히고 시간도 거꾸로 흐른 것처럼, 또한 해가 진 후에 그 현상을 목격해서인지 한층 신비로웠고, 더욱 속세의 것이 아닌 듯 느껴졌다. (P67)
애니와의 관계 : 맞고소도, 비난도 없이 헤어진다는 것. 쉽게 얻은 건 쉽게 잃게 마련이야. ~~~ 관계가 그렇게 쉬울 수 있다는데, 굳이 더 복잡할 필요가 없다는 데 나의 일부는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았던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되었다. (P84)
그 시절 우리는 자살이 모든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임이 철학적으로 자명하다고 여겼다. (P87)
에이드리언 :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만약 바란 적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P88)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P95)
한 영국인이 결혼이란 처음에는 푸딩이 나오지만 그다음부턴 맛없는 음식만 나오는 식사라고 말한 적이 있다. (P97)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과 동등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다.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P111)
마거릿 :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리고 이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자, 가장 먼저 그를 매료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P116)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P141)
배우면 배울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학문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맥락에서 '배우는' 것이다. (P145)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삶을 책임졌고, 그것을 지휘했으며, 온전히 포착했다. 그리고 놓아주었다. (P153)
그러나 시간이란....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릅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P162)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P182)
나는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P183)
새로운 기억이 느닷없이 나를 엄습했을 때-는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마치 강물이 역류한 것 같았다. (P211)
또 부모라면 누구나 누리는 복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식이 태어났을 때 사지 멀쩡하게 정상적인 두뇌를 가지는 것, 그리고 아이가, 소녀가, 또 성인여성이 장차 자신의 능력껏 인생을 이끌게 해주는 정서적인 기질을 갖추는 복에 대해 생각했다. 평범한 인간이 되기를. 한 시인은 이렇게 갓 태어난 아기에게 축원하지 않았던가. (P245)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 '과연 작가의 언어적 역량이 독자의 사고와 감각을 넓힐 수 있는가' 하는것. (P258)
우리의 기억은, 아니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얼마나 자주 우리를 기만하고 농락하는가. 그런 기억에 의존해 진리를 만들어가는 우리으,ㅣ 이성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안이한가. 올더스 헉슬리 "각자의 기억은 그의 사적인 문학" (P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