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책읽고 내 생각 적기)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최인훈 1976 문학과지성사)

무우우우니 2023. 7. 21. 18:01

박태원의 동명소설을 찾다가 오류로 읽게 된 책이었다. 읽는 시간은 거의 일주일이 걸렸고, 1970년대에 씌여진 책임에도 문체나 문법이 지금과 많이 달라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누군가 어떤 글을 쓸 때는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배경지식 없이 글들을 보다보면 이해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최인훈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1도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박태원의 동명소설을 읽게 되었고, 블로그를 찾다가 현대 소설가로 사람의 아들 이문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의 조세희와 더불어서 최인훈의 광장을 꼽는 내용을 읽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을 통해서 1969~1972년의 서울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의 새로운 장점을 알게된다.

이 소설은 박태원의 동명소설의 형식을 빌렸다고 해서 어떤 형식을 빌린 것인가 몰랐는데, 여기저기 찾다보니 몸의 이동과 의식의 흐름을 번갈아가면서 교차 기술함으로써, 작가의 내면을 드러내고, 하고 싶은 말을 소설속 주인공을 통해서 토로해 내는 형식을 차입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소설가의 하루는 나름 바쁘다. 친구 문인들을 만나고, 소설 평가를 통해서 공모전 당선작을 고르고, 주변의 사람들을 살피면서 소설의 인물을 구성하고, 주변풍경에서 떠오르는 자기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한탄하고...

이북에서 홀로 월남해서 작가로 사는 고독과 외로움이 주된 이야기의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어떤 조그마한 사건에서 전혀 다른 주제로 흘러들어가서 지나가는 이야기의 진행방식 때문에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생각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않다. 이 책도 절반이 넘어가야 겨우 친해지고, 말투도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 지난날의 서울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글을 쓰는 것과 관련해서도 많은 소재들로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글쓰는 또하나의 이유를 찾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인훈 작가님의 생각의 흐름을 통해서 1970년대 지식인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판단을 옅볼수 있었다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최인훈 작가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장"을 읽어볼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다. 아직도 읽어야 할 책은 많고, 나의 문해력은 내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 같아 읽기에 조심스럽다. 역사, 과학, 소설, 사회과학 등 읽을 수 있는 분야가 너무 많고, 나의 지식이 얕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읽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내 자신의 지식수준을 너무 자주 알게해주는 독서모임이 원망스러우면서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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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하늘의 그 고운 것들과 고운 것들 사이에 놓인 공간이 아름다움이면서 무서움인 것처럼, 한 시인을 축하한 사랑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무서움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P41)

공작 : 종이가 찢어져서 살이 털털거리는 그런 부채가 아니고 여러 겹으로 접힌 안전 면도날을 손에 몰아쥐고 트럼프 장 펴듯이 펴는 것처럼 쇠붙이스러운, 싸아악 하는 소리였다. (P43)

한마디로 책을 안 읽는 거죠 (P79)

기계화하면 삶의 가장 중요한 어떤 맛을 낼 수 없는 것 같아. ~~망설임을 표현 못하는 탓이 아닐까. (P102)

활자가 끝나고, 영상이 시작하는 게 아니라, 활자와 영상이 공존하게 된다고 봐. 문명의 발전은 흥망이라는 모델에서 축적, 쌓인다는 모습으로...그러니까 각 시대마다의 문화가 소멸하지 않고 지층 모양으로 겹친다고 보는 거야. 나무의 나이테처럼. (P124)

동네가 난리를 만나거나 염병에 걸렸는데 가야금을 뚱땅거리는 건 잡담 제하고 개새끼에 틀림없다. 그럴 때는 예술가도 남을 보살피기 위해서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구보씨가 택한 길은 진짜로 팔을 걷어붙이는 길이 아니라 '글 속에서' 팔을 걷어붙여보자는 길이었다. (P132)

예술이라는, 과학이라는, 신대를 잡으면 본의 아니게 정말을 실토하게 된다. 신들린 무당처럼, 용한 무당도 술 먹고, 오입하고 사기도 한다. 그러나 신대를 쥐고 몸을 와드드 떠는 당장에만은 정말을 중얼거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그게 직업의 허영이다. 신들린 만을 녹음한 기계- 그것이 바로 책이다. (P164)

어떤 지식노동자가 정치를 '물욕;의 대상으로 삼아서 이리저리 둘러치고 돌리고 굴려서 거기서 "리(이익)"를 남기려고 할 때, 정치는 나사못이 되는 것이요, 정치를 "시심"의 대상으로 삼아서 거기서 기쁨만을 보려고 할 때 정치는 한 판의 예술이 되는 것이다. (P176)

입 가진 사람마다 입 생긴 대로 풀이하는 세상이고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 한 꼭지 지어내는 것이 어렵고 어려웠다. (P180)

나무는 탄산가스를 분해해서 흡수한다. 대상의 족보는 내 알 바 아니고, 내 개인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은 나의 정신의 소화력뿐이다. 나는 무엇을 소화했는가? (P191)

인생의 반허리 까지 살고 보니 진리란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며 더 바르게 말하면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끔 되었다. (P217)

이날만은 야간 통행 제한이 걷힌다. 한 해 동안 하루만은 밤 시간에 나다닐 수 있다는 것은 큰 해방감을 준다. 그래서 이날은 실상은 서양 풍속으로 치면 카니발이 된다.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의 카니발이다. 이날에는 한국 사회의 모든 심층 사회 심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소용돌이친다. 막연한 해방감~~~(P264)

무엇이든지, 즐기는 자리에서 보면 그것은 예술품이 된다. (P298)

소설이라면 알다시피 세상살이 이야기 한 꼭지를 지어내서 세상 이치를 밝혀내고 인물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다. ~~~ 그러니 세상이치와 시비곡직이란 것만은 환히 꿰뚫어 보아야, ~~~(P319)

이중섭 : 그 모든 것을 자기의 생애라는 실존의 한 가닥 질긴 실로 꿸 수 있었다는 것. 모든 사람이 제 얼은 빠져서 유리처럼 부서지고 피비린내 나는 땅에서 귀신처럼 허덕일 때 그 속에 살면서 자기 목숨의 길을 잃지 않고 운명의 길목에서 만나는 것마다 그것이 소재든 수법이든, 사상이든, 신비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한 가지 주제, 그 자신의 목숨의 걸음걸이 속에 끌어들여 그의 삶이 신화로 만들었다는 것~~~ (P359)

화가는 피난살이 속에서 훌륭한 그림을 남기고 있었다. 뛰어난 그림을 눈앞에 보면서, 그것을 그린 사람의 처지를 동시대인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일이 행복하였다. 예술과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맺어져 있는자를, 그 맺음 마디가 아직도 단단한 현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공부였다. (P370)

삶과 생각이라는 것은 기름과 물, 돌과 나무 같은 것은 아닐 터이다. 아마 기름속의 기름, 강물의 밑 흐름 같은게 아닐까. 삶이라는 나무의 한 뻗은 가지가 생각일 게다. 삶 속에 -- 행동, 생각, 꿈 이런 것들이 있는 것이다. (P371)

뫼가 있구나 내가 있구나 하는 마음이 일게 되는 것이 산천을 대하는 단 한가지 보람이다. (P391)

구름과 나 사이에 걸치는 것이 없고 강물과 나 사이에 가로막는 것이 없게 되고 싶다고 합니다. ~~~조선 팔도를 샅샅이 걸어다니다 보면 이 세상과 내가 하나라는 이치가 마음에 앞서 두 다리 정강이에 사무치게 된다더군요.(P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