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가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책들 중의 하나이다. 추천을 받은 적도 없었고, 빌리기 직전까지 빌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날 도서관의 대출매대 앞쪽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뒷편의 추천목록에서 보인 오프라 윈프리와 4,285km라는 숫자에서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은 산맥트랙킹을 하면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책이라는 생각으로 빌렸다.
꽤 오랜 시간을 읽어야 하는 책(551P)이었고, 책의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트랙킹보다는 가족과 개인생활의 내용이 많이 나왔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생각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저자는 19살에 결혼을 했고, 결혼 한 후에도 많은 남자들과의 불륜이 있었고, 마약을 했고, 트랙킹 중에도 남자와의 관계를 재미로 생각하는 듯한 내용들이 있었다. 이혼한 남편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흔들리는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남자와의 관계를 준비하는 등에서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에서 고구마를 좀 먹인다.
그런 한편, 트랙킹에 관련한 내용과 아름다운 묘사와 생각의 표현 등을 재미있게 볼 수가 있었다.
내가 아는 유명한 트랙킹이 유럽의 순례자길, 미국의 애팔레치아 트랙킹 등이 있었지만, PCT라는 새로운 트랙킹 코스를 알게되고,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해외의 트랙킹에 앞서서 대학때 걸었던 지리산 종주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5박 6일의 일정으로 걸었던 길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헐덕여지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지금 당장 5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 길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계속 생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문장들에 공감했었지만, 걷는 것은 강력하면서도 근원적이 경험이라는 부분과 나를 되찾게 한다는 2가지 목적에서 걸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반면에 이 책에서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은 바뀌는 것 같다. 예전 싯트콤이었던 "Friends"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이성과의 관계를 놀이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불륜에 대한 죄책감이 강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고, 그 원인으로 인한 잘못있었다는 것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 생각과는 꽤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금전적인 지원은 철저히 배제하는 부분도 한국과는 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재산을 들여서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고 난 이후의 삶에 대해서 준비하지 않는 모습도 내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이런 여러가지 예상과는 다른 소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은 트랭킹의 시작과 끝을 이어나가면서 변화하는 저자의 변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문제를 가진 미완성의 한 여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수없이 많은 난관을 헤치고, 목표로 한 거리의 트랙킹을 완성해 나간다. 완성해 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해 가는 모습을 따라가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간적 성장을 보는 듯해서 좋았다.
삶의 의미를 매번 찾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고 불안해 하지만, 결국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과 게으름으로 나아가야 할때 나아가지 못하면, 그 결과는 후회로써 인생이 되돌려주는 것이 아닐까?
이번주말 가까운 산으로 산행이라도 나가봐야겠다.
-----------------------------------------------------------------------------------------------------------------------------------------------------------------
PCT를 홀로 걷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결심을 하게 된 건 바로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P14)
그냥 계속해서 길을 걷는 것뿐. (P15)
신은 있었고 나는 그걸 절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신은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하거나, 일어나지 않게 할 어떤 의도도 갖고 있지 않았다. (P45)
나는 엄마가 내게 '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딸'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P46)
천 가지 일 중에서 내가 내 자리를 다시 찾는 데는 몇 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 나는 내 자신의 길을 저 숲 속 너머에서 찾아야만 했다. (P53)
처음에 생각했던 생기가 몸에서 다 빠져나가고 갑자기 사방에 노출된 느낌이 들었다. 지난 6개월여 동안 이 순간만을 상상해왔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와 있는 나는, PCT로부터 겨우 수심 킬로미터 밖에 있는 나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달리 아주 기운이 없어보였다. (P57)
한 남자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와 상관없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헌신하려는 준비는 거의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P66)
가족의 중심에 위치한 마법의 힘. 우리 모두는 미처 깨닫지 못ㅎ하는 사이에 엄마를 중심으로 그 궤도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P67)
문득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앞으로 걸어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P87)
나는 변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 계획을 세우는 몇 개월 동안 나를 밀어붙이는 힘이 되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예전 모습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P100)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제1권>이 내 성경책이라면 <공통된 언어의 꿈>은 사실상 나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P106)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자, 나는 이 여행 자체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는 이유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P150)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에 오면 나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왔어요. (P207)
내가 있어. 여기 내가 있다니까. 나는 내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은하수 안에 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내가. (P240)
이 황야의 순수함이 나를 구해줄 거라는 것. (P255)
내가 생각하는 건 내 모든 잘못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여기까지 왔고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P336)
지금의 내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장엄한 아름다움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최소한 이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잖아? (P345)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영원히 변치 않는 어떤 것이었다. ~~~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야생에서 어떤 것을 느끼는 하는 것이다. ~~~ 몇 킬로미터고 계속해서 걷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경험은 강력하면서도 근본적인 것이다. (P367)
내가 배운 대로, 이 세상은 결코 장난 같은 건 치지 않는다.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지 뺴앗아가고 다시는 되돌려주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이었다. 나는 정말로 등산화 한 짝을 잃어버린 것이다. (P370)
아예 완전한 파괴와 해체가 구원의 한 방법이 아닐까 (P372)
내가 생각한 내리막길이란 오랜 시간을 들여 막 완성한 털실 스웨터의 실을 잡아 풀기 시작해 다시 원래의 털실 뭉치로 되돌리는 작업 같았다. (P392)
내 안의 나는 이제 강하면서도 겸손하며 마음이 하나로 합쳐졌다. (P415)
나는 어느새 강제로 훌쩍 어른이 되었고 동시에 엄마의 잘못들을 모두 용서해야만 했다. (P471)
그저 우주를 향해 내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엄마의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사는 여인이 되게 하소서. (P481)
어떤 일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도는 없는 법이다. 일이 어떻게 이어지고 또 일을 망치는 원인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인생을 피어나게 하거나 망치게 하거나 혹은 방향을 바꿔버리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잘 모른다. (P536)
'독후감 (책읽고 내 생각 적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2023) 독후감 2편. 23.08.4 ~P733 (1) | 2023.08.04 |
---|---|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2023) 독후감 1편. 23.07.31 ~P168 (3) | 2023.07.31 |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최인훈 1976 문학과지성사) (0) | 2023.07.21 |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박태원, 2005, 문학과 지성사) (2) | 2023.07.20 |
설득의 심리학3 (로버트 치알디니외 2인) (0) | 2023.07.11 |